숲이 보이는 서울 아파트에 살기로 했다

박은아 2024. 9. 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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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쉬었다 가고 싶은 집. 스테이를 연상케 하는 서울의 숲 뷰 아파트. #홈터뷰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 정착한 아파트에서 안온한 집 생활자로 누려보는 시간들. 마흔한 번째 홈터뷰.

안녕하세요. 사부작사부작, 자발적 집 생활자의 길을 선택하여 살고 있는 페코(@mrs.pecker)라고 합니다. 본명 대신 페코라는 부캐로 저를 소개할게요.

저는 디자인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육자로 지내다 4년 전 즈음 제 삶에 전환점을 맞아 보고 싶어 집에 머무르게 됐어요. 25년지기 베프인 남편, 12살 된 푸들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고요. 집에서 빵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요리조리 만들어보고 있어요. 매일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며 지내고 있네요!

「 봄, 여름, 가을, 겨울 」
1년 6개월 간 거의 매주 집을 보러 다녔던 때가 있었어요. 한강 북쪽으로 산과 강을 모두 접한 곳이면 다 가봤죠. 서울이 정말 크구나, 새삼 다시 한번 실감했던 것 같아요. 이 아파트는 운명처럼 4월에 만나게 됐어요.

창 밖으로 만개한 봄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는데,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서 꼭 이 집에서 살고 싶었고, 살아야 할 것만 같았고, 왠지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런 제 마음이 간절했던 건지, 그날 오후에 저희가 원래 살고 있던 집을 사겠다는 분들이 나타난 거예요. 정말 인생은 타이밍인가 봐요.

「 기본에 충실한 담백한 집 」
이미 사계절의 풍경을 품은 멋진 집이었어요. 그래서 인테리어는 기본에 충실하게, 눈에 두드러지는 화려한 장식은 생략하기로 했죠. 독특한 구조 변경이나 포인트 하드웨어처럼 일부러 멋을 내는 듯한 요소들은 다 제외했어요. 세월이 한참 흘러 다시 봐도 손때 잔뜩 묻은 공간에서 정감이 가득 느껴지길 바랐어요.
「 디자인되지 않은 디자인 」
돌이켜보니 인테리어 스튜디오에 추상적이고 막연한 콘셉트를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디자인되지 않은 디자인’이나 ‘단단하고 옹골찬 집’. 스튜디오나 카페 같은 집은 절대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던 기억이 나요.
공사는 모노엠(@studio_mono_m)에서 해주셨어요. 이전 집 인테리어를 맡아 주셨는데, 그 인연으로 두 번째 집도 호흡을 맞춰봤어요. 집 공사는 상호간 호흡이 중요하잖아요. 제가 원하는 걸 콕 집어 설명하면 탁 하고 이해해 주시는. 그래서 힘들기보단 즐거웠어요.
「 한옥 창호에서 영감 받은 접이식 덧문 」
언젠가 한 번은 커튼 대신 한옥의 창호 같은 문을 덧대어 살아 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어요. 한지를 투과해 퍼져 들어오는 빛은 아름답고 따스하잖아요. 수직과 수평이 이루는 선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요.

하지만 진행 과정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거든요. 거실 샷시를 다 커버하려면 사이즈도 커야 했고,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야 하니 단단한 원목을 사용해야 했어요. 정확한 비용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40평 아파트 광폭 원목 마루를 까는 것보다 비쌌어요.

포기할까 말까 매일 고민하다 결국 마음이 가는 대로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안 했으면 후회했겠다 싶을 정도로 만족해요.

이 접이식 도어를 일본 스타일로 느끼시는 분들이 꽤 계신데요. 일본 인테리어에 관심도 많고, 일본 여행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료칸 분위기를 내기 위해 설치한 건 아니에요.

한국과 일본의 전통 가옥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하지만,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서로 유사성을 보이는 부분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어떠한 특정 스타일을 넘어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로 공간을 그려 나가고 있어요.

「 창틀을 액자처럼 」
집에 창문이 총 여덟 개가 있어요. 크고 작은 창들을 액자처럼 활용하고 싶어, 프레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놀랍게도 모든 창을 통틀어 밖에 보이는 인공물이라고는 전봇대 하나가 전부예요.
「 단정한 첫인상 」
현관은 그 집의 첫인상이라고 하잖아요?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 단정하고 포근하길 바랐어요. 슬라이드가 아닌 미닫이 형식으로 설치했고, 거실의 접이식 도어 디자인을 그대로 활용해 연결감을 주었어요.
「 매일 새롭게 」
저는 제법 하루를 바쁘게 보내요. 집에서만 6-7천보를 걷는 날도 수두룩해요.

아침 8시 넘어 남편이 출근하면 저만의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돼요. 오전엔 라디오 들으며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하고요. 다음날 구울 빵 반죽도 만들어 놔요. 저만의 레시피를 갖고 싶어 매일 조금씩 레시피도 다르게 시도해보고 있어요. 강아지들과 산책하고 운동도 가볍게 하고요.

오전을 분주히 보내고 나면 오후에는 어젯밤에 계획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요. ‘내일은 이 책을 읽어야지, 저 영화를 볼 거야. 초콜릿 쿠키를 구워야겠다.’ 같은 소소한 계획들이 대부분이지만, 전날 밤 이런 생각들을 하면 아침이 오는 게 설레고 기다려지더라고요.

「 상부장으로 커버한 반 오픈 주방 」
만들어 먹는 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만큼, 오래 머무를 주방은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만든 결과물이에요.

요즘은 오픈형 주방이 대세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오픈형 주방이 부담스럽더라고요. 나름 정리와 청소에 일가견이 있음에도 조금만 소홀해도 티가 나는 게 부엌이다 보니 거실과 분리되길 바랐어요.

구조의 한계로 완전한 폐쇄형 주방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싱크대 앞쪽에 아일랜드 홈 바를 만들고 위쪽으로 상부장을 설치해 가벽 같은 효과를 주었어요.

싱크대 앞에 서면 거실 창으로 푸르른 숲 뷰가 펼쳐지고, 냉장고를 열기 위해 몸을 돌리면 깊은 산 뷰를 마주해요. 때때로 이곳이 서울의 아파트가 아닌 산속 오두막집 같다는 기분이 들어요. 창을 열면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지거든요.

그래서인지 이사 오고 주방에 서는 매일매일이 즐겁습니다. 그저 싱크대 앞에 서기만 해도 절로 건강한 음식이 만들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오늘도 저녁밥 한상, 거하게 차려볼까 합니다.

「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주방 」
정말 잘 샀다고 생각하는 건 하이브리드 인덕션이에요. 뚝배기나 직화 냄비 써야 할 땐 가스레인지가 편하니까요. 관리도 쉽고 쓰임도 좋고요.

튀김 요리를 좋아하신다면 오일 팟도 추천드리고 싶네요. 저희는 튀김류를 조금씩 자주 해 먹는 편이라 남은 오일을 보관해 두는 오일 팟을 요긴하게 잘 쓰거든요.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오일 팟 대부분은 1L 이상이라 일본 여행 갔을 때 300ml 사이즈를 구해 왔어요.

해외에 나가면 생활 용품 가게 들러 살림 도구들을 챙겨 사 오는 편이에요. 다른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살림 도구들을 구경하다 보면 신기한 게 정말 많고 필요했던 걸 발견하는 행운도 얻을 수 있어요.

「 텐도 목공 그리고 무인 양품 」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숍에 들러 쇼핑하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직접 보고 사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어서요!

무인양품은 20년 가까이 이용 중이라 제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브랜드이고, 한남동에 갈 일이 생기면 TWL과 디앤디파트먼트는 꼭 들러 보고 와요.

거실 체어는 일본의 텐도 목공이라고 하는 가구 회사에서 생산됐다가 단종된 모델인데요. 운이 좋게도 국내에 겨우 네 점 입고된 것 중 두 점을 제가 소장하게 됐어요. 투자 가치가 있는 유명한 빈티지 가구는 아니지만 경쾌한 듯 차분한 그린 컬러가 너무 매력적이에요.

식탁 펜던트 조명도 빈티지예요. 독일 도무스사에서 70년대에 출시한 디자인으로 현재는 단종된 모델이죠. 패브릭 쉐이드가 미색인데 세월의 빛을 켜켜이 쌓아온 것처럼 멋스러워요. 쉐이드 안쪽에는 조명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우드 핸들도 숨어 있어요.

「 소개하고 싶은 집 」
일본의 시골집 감성을 엿볼 수 있는 @kagae_hironobu 님 댁을 추천하고 싶네요. 아빠와 엄마, 세 명의 아이들 다섯 가족이 자연과 어우러진 주택에서 보내는 일상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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