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고 싶었던 차팔라 호수, 직접 보니 공포스러웠다

한상언 2024. 9. 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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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표 여행지, 극심한 가뭄 탓 수위 감소 뚜렷...기후 재앙, 먼 일이 아니구나

[한상언 기자]

여행지를 선택할 때, 내가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나라를 1순위로 삼았던 이유는 뭘까. '언젠가 나중에 다시 가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머리 복잡했던 퇴사 후, 오래 그려왔던 멕시코를 드디어 여행하고자 결정했을 때도 자연 친화적인 이 나라에서 꼭 가고 싶은 곳은 '호수'였다. 그리고 지난 6월, 마침내 배낭 하나를 메고 멕시코 지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이곳으로 떠났다.

멕시코의 대표 호수 차팔라,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 차팔라호수 보트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수위가 낮아져 예전만큼의 운영은 어렵다.
ⓒ 한상언
차팔라 호수(Lake Chapala)는 멕시코 서부에 위치한 할리스코(Jalisco)와 미초아칸(Michoacán) 경계에 걸쳐있는 멕시코에서 가장 큰 호수다. 국내에서는 과달라하라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갈 만한 근교 여행지로, 멕시코에서는 미국인 등 외국인들이 은퇴 후 거주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은퇴자들, 심지어 외국인들이 와서 여생을 보내는 정도라면 이 도시는 충분히 평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다. 집 앞에 그림 같이 펼쳐져 고요히 흐르는 호수, 청명한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을 깨끗한 물. 인터넷 속 사진들을 이리저리 찾아보며 여행을 기대했다.

마침내 인근 버스터미널에 내려 호수로 향할 때. 햇볕은 마치 내 살을 태워버릴 작정인 듯 내리쬐었다. 뜨거움을 넘어선 따가움, 마치 타투 바늘로 피부를 한 땀 한 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멀리 온 만큼 호수 곳곳을 둘러보고 싶어 물 가까이로 가 한참을 걸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호수 주변을 걷다가 지쳐 식당엘 들어갔다.

호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식당은 규모가 엄청나 좌석 수만 봐도 이곳의 관광객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수기 평일 낮이라 그런지 좌석에 비해 손님 수는 소박했고, 나 같은 아시안을 오랜만에 보는지 주문을 받는 서버(식당 직원)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는지, 여기 놀러 왔는지 묻더니 이내 갑자기 자기 핸드폰 속 호수 사진을 보여준다.

"제가 여기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원래는 저 호수가 이렇지 않았어요. 최근 3~5년 사이 극심한 가뭄이 와서 물이 다 마른 거예요. 원래는 물이 깊어서 가까이 가려면 다리로 지나가야 했는데, 지금은 다리 없이도 다 걸어 다니잖아요. 비도 안 오고, 관광객도 안 오고. 앞으로 이곳이 어떻게 또 변할지 모르겠어서 걱정이에요."
▲ 차팔라호수 왼쪽(2024년, 현재)과 오른쪽(2022년)을 비교했을 때, 글자 뒤 물의 수위가 급격하고 현저히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 과거 사진의 출처는 https://foursquare.com/, 왼쪽은 직접 촬영.
ⓒ 왼쪽: 한상언
햇빛이 피부를 자비 없이 태울 때, 물가로 한참을 걸어갈 때, 걸어가는 길이 아주 말랐거나 군데군데 질퍽했을 때 나는 내가 봤던 사진 속 차팔라 호수의 모습이 더는 아니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저 뜨거운 날씨에 정신 못 차리며 신발에 흙이 묻는다며 찝찝해 했다.

서버의 말을 듣고 뒤늦게 찾아보니 올해 3월 멕시코뉴스데일리(Mexico News Daily)는 "호수 수위가 지난 2년 동안 수용량의 50% 이하로 기록되었다"라고 보도한 바 있었다. 물이 줄어든 거구나, 뉴스가 눈 앞에 실제로 살아있는 걸 안 순간 여긴 더 이상 낭만 가득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기후 위기를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는 도시, 기후재앙 현장이었다.

호수가 다시 보였다. 호수 뷰를 마음껏 자랑해야 할 식당 앞은 이미 잡초가 자라고 있었고, 몇 아이들은 그 길을 헤치고 식당 담장을 넘어와 여행객인 우리에게 돈을 요구했다. 내가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인 '언제 다시 가더라도 그대로 있을' 모습은 사라지고 있었다. 이 곳은 이미 관광도시로서의 힘도 잃은 듯했다.

몇 년 후엔 어떤 모습일지 짐작하기도 어려웠고, 지금 이만큼의 물도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게 공포로 다가왔다. 동시에 나의 오만함을 깨달았다. 두려워졌다.

'지구는 인간의 낭만을 지켜주지 않는다, 인내하는 시간은 어쩌면 진작 끝났을지 모른다.'

할 수 있는 실천 해왔지만... 직접 보니 참담했다
▲ 차팔라호수 가뭄으로 몇년새 확 줄어든 물, 왼쪽 식당 건물 앞으로 잡초가 자라고 있다.
ⓒ 한상언
기후 위기에 상대적으로 민감해, 현대인들 중 일부는 무기력감 등 '기후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 불안증과 무신경한 불감증 사이에서 나는 상대적으로 불안증일 거라 생각했다.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한 비건식 실천, '음쓰(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지속가능한 제품 구매 등 일상 속 실천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둔 차팔라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내 눈으로 목격하고 나니 문제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멕시코, 지구의 반대편 거리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왜인지 남 일처럼 여길 수가 없었다.

거시적으로 다루던 기후위기가 미시적인 관점에서 먹고사는 일 즉, 내 일로 보일 때야 위험을 감지하는 아둔함. 나는 이날 차팔라 호수를 걸으며 신발에 흙이 묻어 더러워지고, 날씨가 뜨겁다고 에어컨이 있을 법한 가게를 찾아본 나를 반성했다.

'온난화가 심각하다'고 말론 얘기하면서도 내심 '모두의 문제이지, 이건 당장 나의 문제는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나.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못한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됐다. 그리고 생각이 길어져 죄책감이라는 단어마저 떠오를 때, 나는 다짐했다. 앞으론 죄책감에 익숙해지기보다 기후문제에 대한 책임감에 더 익숙해져야겠다고.

호수는 지금도 조금씩 말라가고, 물이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조차 금세 잊고, 저 때의 반성과 다짐이 무색하게 살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나를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 더웠던 저 날의 불평과 불만보다, 앞으로 우리와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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