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할 부고

전여주 2024. 9. 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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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셨는데... 어느 활동가를 기억하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여주 기자]

뉴스에서 고독사(혼자 사는 사람이 타인의 간호나 보살핌없이 외로이 사망하는 것을 이르는 말)에 관련한 기사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심히 읽어보긴 했지만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보니 며칠 지나면 금방 잊히곤 했다.

나와는 멀게만 느껴졌던 그 일이 내 지인의 일이 되니, 평소 그리 가깝지 않은 분이었음에도 평생 잊지 못할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아니, 평생 잊지 않으려고 이 글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오후, 비보를 받았다. 한 달전쯤 이사를 하려는데 이사 비용이 없다며 30만원만 보내줄 수 있겠느냐는 톡을 보내셨었다. 하필이면 늦게 시작한 공부의 논문심사학기라서 나도 등록금 낼 돈만 간신히 준비해두고 있는 상황이라 정말 죄송하다면서 상황 설명을 했다.

2주 전에는 그분의 상황이 좋지 않아졌음과 건강에도 이상이 있으시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화통화를 했지만 평소와 다르게 나중에 이야기 하자며 전화를 끊으셨다. 예감이 좋지 않았지만 논문을 핑계삼아 조금 마무리 되면 찾아 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음 한켠의 불길한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그런 상황에서 받는 비보여서 더더욱 죄송했고 너무나 많은 후회가 된다.

이분과 나의 인연은 4년 전, 이분이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경기지부장이셨을 때 시작되었다. 나는 법인의 대표로 공공성이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고 지자체의 배달앱처럼 대리운전앱을 그렇게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분과 사업 논의를 하기 위해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경기도에서 취약노동자조직화지원사업의 회계처리와 행정업무를 도와드리게 되면서 그분의 삶을 짧게나마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생전활동모습 대리기사님들의 조직화를 위해 자정이 넘어 아웃리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전여주
대리운전 사장님들은 말이 좋아 사장님이지, 취약계층 노동자이고 노동자의 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어(자영업으로 취급) 제대로 된 노동자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런 노동자들을 결속시켜 대리운전 업체들과 대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하고 작게나마 처우개선을 위해 대리기사님들을 만나려고 새벽에 텐트를 치고 아웃리치를 진행하셨다.

이런 헌신 덕분에 처음 경기지부장에 취임하셨을 때 조합원 10여 명에서 200명까지 조합원이 늘어나는 기적과 같은 일을 만들어내기도 하셨다.

그 뿐이 아니다. 전국에 이동노동자쉼터를 만든 당사자이고 작년 7월 시행된 대리기사님들의 산재보험 적용도 모두 이분이 노력한 결실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실제 조합원이 누리는 이익이 정말 많지 않다며 공제회를 설립하여 대리기사님들의 어려운 삶의 사정들을 서로 돌아보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항상 짱짱하던 목소리에 힘이 빠지셨고 병원에서 약을 타오셨다고 했다.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거냐고 여쭤봐도 병원에서도 딱히 병명이 안 나온다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워낙 연세가 한창(55세)이시고 항상 에너지가 넘치시는 분이시니 잠깐 그러시다 말겠지라고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그분의 삶은 더 대단했다. 경기도 광주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시는데 앞장서셨고 지역에서 시의원으로 출마도 하셨고 젊으셨을 때 노동당 창립멤버로 활동하시면서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누구보다 열심이셨던 분이시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끔 사시는 동네에 가서 함께 식당이나 어딜 가더라도 알아보시고 인사하시는 분들이 참 많았었다.

이런 삶을 사시느라 그러셨는지 자신을 위해서는 가정도 꾸리지 않으셨다. 내게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내가 조직화만 잘 끝나면은 꼭 법무사 공부해서 나머지 인생은 폼나게 한번 살아볼라구. 그때 같이 자장면 먹어줄 거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막상 쉽사리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하셨다. 그렇게 한평생 옳은 일을 하시기 위해 빛도 잘 나지 않는 고달픈 삶을 사셨는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홀로 셨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프다. 이분을 이렇게 보내드리면 안되는 건데... 하는 자책과 사회에 대한 회의가 느껴진다.

평생 그렇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셨는데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홀로 쓸쓸히 돌아가신 후 뒤늦게 발견되셨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옳은 일을 선택한 대가가 이런 것인가 하는 씁쓸함을 느끼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을 하게 한다.

사회안전망과 사회보장제도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아닌가?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지만 분명 수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삶을 가꾸지 못한 것에 대해 아무도 짐을 함께 져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려고 할 것인가?

화려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비참하지는 않은 여생이 되도록 사회가, 국가가 울타리가 되어주는 건 그런 삶을 사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이지 않을까.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이제 편안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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