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위해 떠났으나 돌아와서 알게 된 것
[이정희 기자]
찾기위해 떠나다. 이 문장에는 주어가 없습니다. 누가? 어디로? 무얼 찾으러? 여기 서로 다른 주어로 '찾기'를 풀어내는 두 권의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킨츠기>와 <화살을 쏜 소녀>입니다.
제목으로 보자면 '화살을 쏜 소녀'는 주인공이 무엇을 찾으러 갈지 바로 알 수 있도록 '직관적'입니다. 반면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이는 일본의 도자기 기법인 '킨츠기'는 제목만으로는 모호합니다. 하지만 표지를 보니 토끼 한 마리가 파란 찻잔을 따라 헤엄치네요. 토끼가 찾으려는 건 찻잔일까요?
1996년 시작되어 매년 열리는 볼로냐 국제아동 도서전은 아동 도서계의 대표적인 축제입니다. 여러 부문에 걸쳐 라가치상을 수상하는데, 2024년 라가치 상 대상은 이사 와타나베의 <킨츠기>가 받았습니다.
▲ 킨츠기 킨츠기 |
ⓒ 책빛 |
▲ 킨츠기 |
ⓒ 책빛 |
그런데 푸르른 나뭇가지가 하얗게 말라버리는가 싶더니, 새도 하얗게 변해 날아가 버리고, 열매처럼 달렸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허공으로 붕~. 토끼는 날아가 버린 새를 향해 달려갑니다. 살아남은 푸른 이파리 하나를 쥔 채 말이죠.
희망은 한 마리 새/ (중략)그칠 줄 모르고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참으로 매서운 폭풍일지라도/ (중략)작은 새의 노래를 멈추지 못하리
책의 맨 뒷 장 한 켠에 앉은 빨간 새, 그 아래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저 시가 적혀 있습니다. 새의 노랫소리가 들렸을까요? 토끼는 떠납니다. '정글 숲을 기어서', 심지어 깊고 깊은 심해의 바닷속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빙하에 의지해 떠오른 토끼의 손에는 푸른 이파리 뿐입니다.
나는 몹시 추운 땅에서도/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를 들었네.
하지만 희망은 결코 내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네
시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숲과 바다를 헤매였건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은 희망, 토끼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귀를 축 늘어뜨린 채. 그를 기다리는 건 산산이 부서진 잔해들 뿐입니다.
▲ 킨츠기 |
ⓒ 책빛 |
와비사비('侘び寂び)란 일본어가 있습니다. 부족함이란 뜻의 와비와 빛바램 등을 뜻하는 사비가 합쳐진 이 조어가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술품이 바로 '킨츠기'입니다. 깨져버린 것, 하지만 그로부터 역설적으로 삶의 불완전성이 주는 아름다움이 탄생됩니다. 그 어느 곳을 헤매어도 찾을 길 없는 희망, 그건 '킨츠기'처럼 스스로 다시 이어붙일 때만이 찾아지는 것이라고 이사 와타나베는 말하고 있습니다.
▲ 화살을 쏜 소녀 |
ⓒ 도도 |
▲ 화살을 쏜 소녀 |
ⓒ 도도 |
하지만 소녀는 계속 나아갑니다. 처음에는 그저 혹시 누가 맞았을까 걱정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 앞에 펼쳐진 큰 숲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소녀는 '목소리'에 맞서 자꾸만 더 나아갑니다.
우거진 숲을 지나 새들의 노랫소리, 꽃들의 한숨, 메뚜기의 딸꾹질, '나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이끼 덮힌 바위를 품에 안으며 '나는 약하지 않아'. 소녀는 화살을 찾고, 또 다른 세상도 찾고 싶습니다.
화살을 찾는 직관적인 이야기인 듯 했던 그림책. 하지만 소녀의 용기 있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저 화살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소녀는 화살을 쏘았습니다. 소녀가 살던 세상을 넘어서 날아간 화살, 소녀의 마음은 화살을 따라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 화살을 쏜 소녀 |
ⓒ 도도 |
우리는 살면서 종종 길을 떠납니다. 실제 여정에 나설 수도 있고, 혹은 마음의 행로에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그 행보를 통해 무언가를 찾고 돌아올 수도 있고, 혹은 빈 손으로 터덜터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삶의 모든 행로는 <킨츠기>와 <화살을 쏜 소녀>처럼 있으면 있는 대로, 빈손이면 빈손인 채로 쥐어주는 게 있는 듯합니다. 잡히지 않는 희망의 새에 안타까워하는 대신, 멀리 날아간 화살에 주저하지 말고, 내 여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초자아 ; 삼중 구조 모델의 세 가지 체계 중 하나로서, 이상과 가치, 금지와 명령(양심)의 복잡한 체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심리적 대리자를 가리키는 용어. 초자아는 자기를 관찰하고 평가하며, 이상과 비교하고, 비판, 책망, 벌주기 등 다양한 고통스런 정서로 이끌기도 하고, 칭찬과 보상을 통해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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