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위해 떠났으나 돌아와서 알게 된 것

이정희 2024. 9. 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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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그림책] <킨츠기> , <화살을 쏜 소녀>

[이정희 기자]

찾기위해 떠나다. 이 문장에는 주어가 없습니다. 누가? 어디로? 무얼 찾으러? 여기 서로 다른 주어로 '찾기'를 풀어내는 두 권의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킨츠기>와 <화살을 쏜 소녀>입니다.

제목으로 보자면 '화살을 쏜 소녀'는 주인공이 무엇을 찾으러 갈지 바로 알 수 있도록 '직관적'입니다. 반면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이는 일본의 도자기 기법인 '킨츠기'는 제목만으로는 모호합니다. 하지만 표지를 보니 토끼 한 마리가 파란 찻잔을 따라 헤엄치네요. 토끼가 찾으려는 건 찻잔일까요?

1996년 시작되어 매년 열리는 볼로냐 국제아동 도서전은 아동 도서계의 대표적인 축제입니다. 여러 부문에 걸쳐 라가치상을 수상하는데, 2024년 라가치 상 대상은 이사 와타나베의 <킨츠기>가 받았습니다.

희망을 찾아서
▲ 킨츠기 킨츠기
ⓒ 책빛
일본인이지만 페루로 이주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사 와타나베의 첫 그림책 역시 길을 떠나는 <이동>입니다. 여우, 토끼, 악어, 코끼리 등 한 무리의 동물들이 생명을 잃은 숲을 뒤로 하고 바다를 건너 꽃이 피는 땅을 향합니다. 검은 바탕에 동물들의 모습들만이 오롯이 드러난 그림책은 2021 소시에르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번 라가치 상을 수상한 <킨츠기> 도 검은 바탕에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이동>에 비해 한층 상징적이고 은유적입니다. 보다 보면 작가가 펼쳐 놓은 매혹적인 세계에 흠씬 빠져버리고 '킨츠기'의 뜻을 되새기며 상념에 빠져들도록 만듭니다.
 킨츠기
ⓒ 책빛
시작은 주인공 토끼의 잘 차려진 식탁입니다. 그의 식탁에는 푸른 나뭇가지들이 뻗어있고 그곳에는 삶에 필요한 물건들이 열매처럼 달려 있습니다. 빨간 새 한 마리와 파란 찻잔도 있습니다.

그런데 푸르른 나뭇가지가 하얗게 말라버리는가 싶더니, 새도 하얗게 변해 날아가 버리고, 열매처럼 달렸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허공으로 붕~. 토끼는 날아가 버린 새를 향해 달려갑니다. 살아남은 푸른 이파리 하나를 쥔 채 말이죠.

희망은 한 마리 새/ (중략)그칠 줄 모르고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참으로 매서운 폭풍일지라도/ (중략)작은 새의 노래를 멈추지 못하리

책의 맨 뒷 장 한 켠에 앉은 빨간 새, 그 아래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저 시가 적혀 있습니다. 새의 노랫소리가 들렸을까요? 토끼는 떠납니다. '정글 숲을 기어서', 심지어 깊고 깊은 심해의 바닷속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빙하에 의지해 떠오른 토끼의 손에는 푸른 이파리 뿐입니다.
나는 몹시 추운 땅에서도/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를 들었네.
하지만 희망은 결코 내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네

시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숲과 바다를 헤매였건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은 희망, 토끼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귀를 축 늘어뜨린 채. 그를 기다리는 건 산산이 부서진 잔해들 뿐입니다.
 킨츠기
ⓒ 책빛
망연자실 하던 토끼, 하나 씩 자신의 물건들을 '킨츠기' 해갑니다. 파란 컵의 반쪽은 하얀 컵으로 맞춰지고. 그 파랗고 하얀 컵에 가지고 떠났던 그 푸른 이파리를 심습니다. 그 이파리는 다시 푸르른 나뭇가지로 자랐습니다. 거기에는 갖가지 '킨츠기'된 물건들이 다시 열매처럼 자라나고 있습니다.

와비사비('侘び寂び)란 일본어가 있습니다. 부족함이란 뜻의 와비와 빛바램 등을 뜻하는 사비가 합쳐진 이 조어가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술품이 바로 '킨츠기'입니다. 깨져버린 것, 하지만 그로부터 역설적으로 삶의 불완전성이 주는 아름다움이 탄생됩니다. 그 어느 곳을 헤매어도 찾을 길 없는 희망, 그건 '킨츠기'처럼 스스로 다시 이어붙일 때만이 찾아지는 것이라고 이사 와타나베는 말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솟아 오르는 목소리
 화살을 쏜 소녀
ⓒ 도도
안 테랄이 글을 쓰고 상드 토망이 그림을 그린 프랑스 그림책 <화살을 쏜 소녀>는 글이 이끌고 그림이 배경이 되어주는 그림책입니다.
 화살을 쏜 소녀
ⓒ 도도
'어디로 날아갔을까요? 혹시 누군가의 심장을 맞췄을까요?' 소녀는 화살을 찾아 떠납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소녀를 말려요. '얘야 더는 가지마'라거나, '넌 지금 혼자야', '아직 강하지 않아'라면서요. 깊은 숲 속에 이르자 '길을 잃었구나'라며 다그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소녀는 계속 나아갑니다. 처음에는 그저 혹시 누가 맞았을까 걱정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 앞에 펼쳐진 큰 숲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소녀는 '목소리'에 맞서 자꾸만 더 나아갑니다.

우거진 숲을 지나 새들의 노랫소리, 꽃들의 한숨, 메뚜기의 딸꾹질, '나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이끼 덮힌 바위를 품에 안으며 '나는 약하지 않아'. 소녀는 화살을 찾고, 또 다른 세상도 찾고 싶습니다.

화살을 찾는 직관적인 이야기인 듯 했던 그림책. 하지만 소녀의 용기 있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저 화살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소녀는 화살을 쏘았습니다. 소녀가 살던 세상을 넘어서 날아간 화살, 소녀의 마음은 화살을 따라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자꾸 소녀를 막아서는 목소리, 그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소녀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초자아(*)'의 경고이겠지요. 우리도 그렇지요. 누군가, 무엇인가의 핑계를 대지만 사실 늘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건 내 안에서 솟아 오르는 목소리 아니였나요? 하지만 소녀는 그 목소리를 무릎 쓰고 한 발 한 발 나아갑니다 .
 화살을 쏜 소녀
ⓒ 도도
<킨츠기>도 , <화살을 쏜 소녀>도 모두 떠났다가 돌아옵니다. 하지만 돌아온 주인공들은 처음 떠날 때의 자신과 다릅니다. <킨츠기>의 토끼도 떠나보았기에, 다시 돌아와 그릇을 맞출 수 있지 않았을까요. 드디어 화살을 찾은 소녀, 하지만 화살을 두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화살을 찾아 떠났지만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으러 떠난 자신'이, '멀리 떠나본 자신', '울타리를 넘어선 자신'이 소녀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길을 떠납니다. 실제 여정에 나설 수도 있고, 혹은 마음의 행로에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그 행보를 통해 무언가를 찾고 돌아올 수도 있고, 혹은 빈 손으로 터덜터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삶의 모든 행로는 <킨츠기>와 <화살을 쏜 소녀>처럼 있으면 있는 대로, 빈손이면 빈손인 채로 쥐어주는 게 있는 듯합니다. 잡히지 않는 희망의 새에 안타까워하는 대신, 멀리 날아간 화살에 주저하지 말고, 내 여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초자아 ; 삼중 구조 모델의 세 가지 체계 중 하나로서, 이상과 가치, 금지와 명령(양심)의 복잡한 체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심리적 대리자를 가리키는 용어. 초자아는 자기를 관찰하고 평가하며, 이상과 비교하고, 비판, 책망, 벌주기 등 다양한 고통스런 정서로 이끌기도 하고, 칭찬과 보상을 통해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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