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조이면서 금리인하 압박…정책 상충, 시장 혼란 키운다
정책 목표와 실제 효과가 서로 엇박자를 내는 경제정책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시장의 혼란을 부르고 있다. 최근 경제의 최대 난제인 내수 부진부터 세수 부족, 집값 문제에까지 “정부가 정책 방향 조정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감세와 긴축 재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정책 상충(相衝)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감세안을 내놓고 있는데, 세수 구멍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도 구체적인 재원 보전 방안은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다.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의 내년 국세 수입 전망치는 382조4000억원으로 2022년 실적치인 395조9000억원보다 적다. 경제는 성장하는데도 국세 수입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 국세 수입은 사상 최대 결손이 났던 지난해(56조4000억원)에 이어 30조원대의 부족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지난해에 이어 내년에도 각종 기금에서 돈을 끌어다 재정 운용에 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국고채 발행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는 분야에서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몇몇 감세 정책이 지금 상황에서 긴박한 문제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건전재정 기조’를 최우선으로 강조하면서 정부의 운신 폭이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세수가 줄었으니 긴축 재정이 불가피하지만, 잠재성장률이 둔화하는 상황에서 재정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총지출을 올해보다 3.2% 늘렸다. 내년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 전망치인 4.5%를 밑도는 수치인 데다, 정부의 재량지출 증가율이 0.8%에 그친다는 점에서 “재정 기능을 포기했다”는 야당의 비판을 받았다. 앞서 최 부총리는 예산안을 설명하며 “경제 활력을 일으키는 데는 정부 재정이 직접 지원하기보다 관련된 인프라나 인센티브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대통령실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모습도 최근 비판을 받았다. 지난 8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언급했다. 기준금리는 물가‧집값·경기 등 다양한 정책 변수가 상충하는 문제인데, 이미 가계부채 급증으로 통화정책의 유연성이 제한된 상황에서 중앙은행에 대한 개입성 발언은 부적절했다는 게 전문가 평가다. 류덕현 교수는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재정은 긴축하면서도, 금리 인하를 통한 통화정책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부동산 관련 정책 중에선 지난 7월 시행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적용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갑작스럽게 미룬 것이 대표적 정책 혼란의 사례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을 연기한 사이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자 정부는 뒤늦게 대출 조이기에 나선 상황이다.
결국 경제정책의 일관성 약화와 컨트롤타워 부재가 정책 상충과 국민 불안을 유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부처 곳곳에 기재부 출신 인사가 포진하면서 컨트롤타워가 작동할 여건은 조성됐지만, 여당‧정부‧대통령실 간 소통 과정에서 정책이 일관성이 약해지며 ‘스텝이 꼬여’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며 “정부의 경제정책에 큰 방향성을 설정하고 당‧정‧대가 함께 나아가야 하는데, 출범 이후 ‘공정경제’란 말 외에는 뚜렷한 방향성이 제시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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