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로 2살 아이 의식불명…정부 “세밀히 살펴볼 문제”
신대현 2024. 9. 3. 17:45
전공의 집단 이탈과 반년 넘게 이어지는 의정 갈등 상황 속에서 응급실을 찾지 못한 2살 어린이가 결국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의학적으로 세밀하게 살펴봐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3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오후 8시40분경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생후 28개월인 A양이 발열과 함께 경련 증상을 보였다. 가족의 119 신고 이후 10여분 만에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그러나 구급대원은 곧바로 병원으로 출발할 수 없었다. 경기 서북권역 병원 6곳에 전화했지만 모두 환자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향했지만 역시 진료를 거절당했다.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병원을 수소문하는 동안 아이의 상태는 악화됐다. 공개된 구급차 내부 방범카메라에는 A양의 어머니가 이송을 거부당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절규하는 모습이 담겼다. A양은 총 11개 병원 응급실에서 이송이 거부됐고, 119에 신고가 접수된 후 약 1시간이 지나서야 12번째 병원인 인천 인하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2살에 불과한 A양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겪고 치료시기를 놓쳐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으며 한 달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 상황을 확인 중”이라며 의학적으로 세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3일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이런 상황이 이송 지연으로 인한 건지, 질병 특성상 불가피했는지, 초기 대응 과정에서 개선할 점은 없었는지 등에 대해 의학적으로 세밀하게 살펴봐야 할 문제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의료공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의료 현장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일부 응급실은 운영 제한에 들어간다. 복지부에 따르면 건국대 충주병원, 강원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실이 단축 운영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은 매주 수요일 야간진료를 제한한다.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아주대병원은 오는 5일 이후 매주 목요일 오전 7시부터 하루 동안 16세 이상 심정지 등 초중증 환자만 받는다.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 수도 줄어들고 있다. 전국 응급의료센터 180개소 중 흉부대동맥 수술이 가능한 곳은 전공의 집단행동 이전에는 72곳이었으나, 현재는 69곳으로 감소했다. 영유아 장중첩·폐색 진료가 가능한 기관은 평시 93곳에서 현재 83곳으로 줄었다. 영유아 내시경 진료는 평시 15곳에서 현재 14곳이, 산부인과 응급 분만의 경우 평시 96곳에서 현재 91곳이 가능하다.
정부는 이러한 중증·응급질환 진료 제한이 최근 새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 인력 부족에 기인한 오래된 문제라고 했다. 박 차관은 “27종의 중증·응급질환의 경우 발생 빈도가 높지 않아 의료기관별로 모든 질환에 대응하지 않더라도 이송과 전원의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응급실 의사 수 감소에 대해서도 전공의 이탈 이후 지속돼 왔다며 최근 상황과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응급실 진료에 일부 어려움이 있어도 붕괴를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료체계가 무너졌다’고 지적하자 “의료체계가 붕괴됐다는 표현은 과하다”고 반박했다. 조 장관은 “어려움이 있지만 응급진료 유지는 가능하다”면서 “일부 주장은 객관적인 통계와 거리가 있다. 병원마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우려가 있는 병원에 전담관을 붙여 밀착 모니터링하고 핀셋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응급실을 닫는 대학병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정부 발표와 달리 이미 많은 응급실이 정상적인 진료를 못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추석을 기점으로 응급진료가 안 되는 질환이 더욱 증가하고 응급실을 닫는 대학이 늘어날 것”이라며 “중증질환 진단이 지연되고 수술이 지연되는 상황이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이 지켜지고 있는 상황인가”라고 반문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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