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셰익스피어 번역' 최종철 교수 "가장 어려운 작품 맥베스"

박병희 2024. 9. 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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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가장 어려운 작품은 '맥베스'였다. 1993년에 맥베스를 가장 먼저 번역한 이유는 맥베스를 우리 말로 옮길 수 있으면 나머지는 다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연세대학교 최종철 명예교수는 30년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작품으로 맥베스를 꼽았다. 최 교수는 30년 넘게 셰익스피어 전작 운문 번역 작업에 천착해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간했다. 민음사에서 10권의 전집으로 출간됐다. 햄릿ㆍ맥베스ㆍ오델로ㆍ리어왕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포함한 비극 10편, 희극 13편, 역사극과 로맨스 외 15편, 시 3편, 소네트 154편을 담았다. 모두 5824쪽 분량이다.

최 교수는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고된 (번역) 작업이 주는 기쁨이 고통보다 더 컸기 때문에 30년을 버텼다"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최종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 제공= 민음사]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대사의 절반 이상이 운문 형식임에도 그동안 산문으로 번역돼왔다. 일제강점기 때 처음 번역이 이뤄진 탓이다.

최 교수는 "1923년부터 한국어 번역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일본에서 번역한 작품을 참고해 번역했다"며 "일본어는 한자, 히라가나, 가타카나라는 3종류의 문자가 혼재돼 압축적인 운문 번역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산문 번역만 이뤄졌고, 한국에서도 이를 따라서 산문 번역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최종철 교수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원전 형식을 살려 운문 번역을 했고 한국말의 아름다움과 리듬도 살려 기존 번역과 차별화를 꾀했다.

"운율을 타고 뜻이 잘 전달돼, 나중에 내가 읽어봐도 참 번역이 잘 됐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엄청 좋았다. 또 번역이 막혔을 때, 집 근처 월드컵 경기장 하늘공원을 뛰다가 갑자기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있었다. 여러 번 경험했는데 그때도 기분이 엄청 좋았다."

최 교수는 분량이 길지 않은 맥베스의 번역이 어려웠던 이유는 글의 밀도 때문이었다고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밀도가 높은데 그 중에서도 맥베스가 특히 높다고 설명했다.

"여러 비평가들이 얘기하듯 셰익스피어의 모든 인물 가운데 맥베스가 가장 시적인 인물이다. 압축, 비유, 상징이 많다는 뜻이다. 맥베스의 분량은 햄릿의 3분의 2, 절반 정도일 정도로 짧은데 엄청나게 압축된 문장들로 쓰였기 때문이다. 길이는 짧은데 번역하는데 시간은 제일 많이 걸렸다."

[사진 제공= 민음사]

가장 재미있고 공감이 가는 작품으로는 햄릿을 꼽았다. 복수를 하려는 햄릿이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가장 넓고 깊게 표현했다. 셰익스피어 이전에는 복수하려는 인물들이 복수 일념이었다. 난관을 헤치고 끝내 복수를 하는 인물들이었다. 햄릿은 복수 자체를 회의하고 중간에 복수를 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복수하는 사람이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굉장히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그리고 어쩌면 진실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자주 공연된다. 최근에도 공연기획사가 신시컴퍼니가 제작하고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등이 출연한 연극 햄릿이 지난 1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지난달 18일까지 황정민이 설립한 공연기획사 샘컴퍼니의 맥베스가 공연됐다.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오늘날에도 계속 공연되는 이유는 르네상스 정신인 인본주의 전통을 고스란히 살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비극 오이디푸스를 예로 들었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신탁에 의해 이미 결정돼 있다. 다시 말해 오이디푸스에서는 외부의 거대한 힘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이에 반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갈등이 핵심이고, 그 속에서 인간 본성의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했다. 최 교수는 르네상스가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영국까지 전파되는데 몇 백년이 걸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에 영국에 전파됐다며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전통을 작품 속에서 살렸다고 설명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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