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야당 비토권' 담은 특검 발의…한동훈 "바뀐 게 별로 없더라"

김효성, 김기정 2024. 9. 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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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더불어민주당·정춘생 조국혁신당·윤종오 진보당 의원(왼쪽부터)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야5당이 공동발의한 순직해병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은 3일 대법원장이 특검 4명을 추천하면 그중 야당이 2명을 정하는, 변형된 제3자 추천 방식의 순직해병 특검법을 발의했다.

민주당과 야4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은 이날 국회 의안과에 새 특검법안을 제출했다.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면 민주당과 비교섭단체 야당이 2명으로 추린 뒤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임명하는 내용이다.

대법원장 추천 후보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민주당 등이 재추천을 요구할 수 있는 비토권까지 들어갔다. 외형은 대법원장(제3자) 추천 방식이지만, 민주당이 적절성 여부를 판단해 대법원장에게 후보 교체를 사실상 무한대로 요구할 수 있는 ‘야당 결정 특검법’이자 ‘유사 3자 특검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개혁신당은 공동발의에서 빠졌다.

특검법의 수사범위는 지난 8월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과 같은 ▶순직해병 사건 수사방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외압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 등이다. 제보공작 의혹은 담지 않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3일 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 논의를 위해 경북 구미시 산동읍에 위치한 반도체 소재·부품 전문기업인 원익큐엔씨를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대표는 지난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 선언에서 “대법원장 등 제3자가 특별검사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의 특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은 지난달 16일 “제3자 추천안을 수용하겠으니 한 대표가 이를 발의하라”고 압박했는데, 이후 움직임이 없자 “9월 중 처리하자”며 특검 추천방식을 변형해 공세 카드로 꺼낸 것이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집권여당 대표가 국민께 한 약속을 이처럼 손바닥 뒤집듯 쉽게 저버리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정치 불신을 낳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친명계 정성호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제3자 추천안을 발의하거나 법안 의결하는 것은 이름이 공개되기 때문에 친한계 의원이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하지만 재표결은 무기명 투표이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8표 이상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새 특검법은 재표결 의결정족수(의원 300명 참석 시 200명 이상)를 맞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1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해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정성호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변형된 제3자 추천 특검법에 대해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 등의 특검법 발의는 대통령 탄핵을 빌드업(사전 준비)하기 위한 음모”라며 “수사기관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뒤, 미진하다고 생각될 때 특검을 검토한다는 당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동훈 대표가 임명한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YTN 라디오에서 “이 특검법이 당내 동의를 받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친윤계 권성동 의원도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자칭 제3자 특검법은 법률적 야바위”라며 “야당이 대법원장 추천 인사를 압축하고, 또 거부할 수 있다. 입맛에 맞을 때까지 특검을 고를 수 있는 특검 쇼핑”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독소조항이 가득하고 정부ㆍ여당이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담았는데, 정치공세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며 “공수처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게 순리”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8월 5일 서울 영등포구 페어몬트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5선 이상 의원 오찬 회동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선 “여권 분열을 노리고 낸 변형된 제3자 특검법이 오히려 한 대표의 출구를 열어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법원장의 특검 후보 추천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제3자 추천 특검법’을 발의했다면 한 대표가 이를 거절하기 힘들었겠지만, 변형된 특검법의 발의된 탓에 한 대표가 손쉽게 거절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 대표는 이날 경북 구미 현장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내용을 봤는데 바뀐 게 별로 없더라”며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제 입장은 그대로다”라고도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의 꼼수 덕에 한 대표가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고도 당내 갈등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도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특검법은 야당의 비토권까지 집어넣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특검”이라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의 불쏘시개로 삼으려고 하다가, 제보 공작 의혹으로 역풍이 부니까 이제는 여권 내부의 분열용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성·김기정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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