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탈탈원전’ 시대…탈원전한 이태리·스위스 친원전으로

김민중 2024. 9. 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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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의 한울원전. 지난 7월27일 3호기는 국내 원전 중 처음으로 10주기(약 16년) 연속 무정지 운전 기록을 달성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세계적 원전 확대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탈(脫)원전을 했던 국가들마저 속속 친(親) 원전으로 돌아서는 ‘탈탈원전’을 추진하면서다.

3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에 따르면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스위스의 알베르트 뢰스티 에너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말까지 탈원전을 폐지하는 원자력 관련 법안 개정 제안서를 의회에 제출해 내년에 의회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뢰스티 장관은 “장기적으로 신규 원전은 지정학적으로 불확실한 시기에 우리의 에너지 공급을 더 안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며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선택권을 뺏는 것은 미래 세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스위스에선 2017년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는 원자력법안이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됐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 후 지난해 11월 스위스는 “전력 수급을 둘러싼 우려를 고려했다”며 원전 수명 연장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탈원전 정책 폐기를 추진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7월16일엔 ‘1호 탈원전’ 국가였던 이탈리아가 탈탈원전을 선언했다. 길베르토 피케토 프라틴 환경에너지부 장관은 “2050년까지 국가 전체 전력 소비량의 11% 이상을 원전이 담당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10년 내 가동을 목표로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 투자 허용 법안을 발의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태양광·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기술은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 안보를 제공할 수 없다”며 “청정에너지의 지속성을 담보하려면 원자력이 전력공급의 한 축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신 원전 기술이 지닌 안전성과 더불어 가계와 기업에 가져다줄 이점을 고려할 때 원전을 향한 국민적 우려도 극복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탈리아는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1990년까지 모든 원전 문을 닫았다.

스웨덴은 1980년 탈원전을 선언했다가 2022년 10월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일찌감치 돌아선 상태다. 벨기에는 2003년 탈원전 관련 법을 제정한 이후 2025년까지 원전 운전을 중단하려고 했다가 지난해 6월 원자로 2기의 수명을 연장하기로 하면서 탈원전 정책에 일단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로써 세계에서 탈원전 정책을 오롯이 펴는 나라는 독일과 대만 두 국가 정도만 남았다. 그러나 이들 국가 내에선 탈원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지난해 4월 완료한 독일의 경우 값싼 원전 배제에 따라 전기요금이 급등하자 글로벌 시장에서 독일 제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철강기업 잘츠기터의 최고경영자 군나르 그로블러는 “높은 에너지 가격 때문에 독일이 제조업 가치사슬을 통째로 잃을 위기”라고 했다. 에너지국제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Sustainable Energy)에 따르면 독일은 탈원전 정책 탓에 2002년부터 2022년까지 20년간 6000억 유로(약 890조원)의 비용 부담을 추가로 안았다.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과 비교해 발전 단가가 싼 장점이 있다. 지난해 국내 ㎾h당 전력 정산단가(도매가격)는 원전이 55원, 신·재생에너지 171원, 액화천연가스(LNG) 214원이었다. 기후 변화 등에 따라 공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 등과 다르게 공급 안정성도 뛰어나다. 인공지능(AI) 확산 등에 따라 글로벌 전력 사용량이 2050년까지 2.5배로 불어날 전망(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이 나오는 가운데 원전을 배제하면 전력 발전 비용이 급증하고 공급 안정성이 떨어져 산업 활동에 악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탄소 배출도 거의 없어 세계적 탄소 중립 목표를 이루는 데 적합한 친환경 에너지이기도 하다. 기술 발전 등으로 안전성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됐다.

세계 각국이 원전 확대를 가속하면서 한국 원전 업계는 반색한다. 앞으로 원전 건설 일감이 줄줄이 쏟아질 가능성이 커져서다. 일단 지난 7월 24조원 이상 규모의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을 사실상 수주하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정범진 한국원자력학회장(경희대 교수)은 “전 정부 때처럼 탈원전 정책을 펴면 원전 생태계가 무너져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며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을 더불어 육성하는 현 정부 정책이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국민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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