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전기차에 밀린 폭스바겐, 독일서 공장 폐쇄·구조조정 추진
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이자 독일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폭스바겐 그룹이 독일 내 공장 폐쇄와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폭스바겐은 현재 상황에 대해 “극도로 긴박하며 위험한 지경”이라며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신은 폭스바겐의 이번 발표에 대해 “전기차 전환에 뒤처진 유럽의 자동차 산업이 침체의 길에 들어선 증거”라고 전했다.
2일(현지시간)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와 공영매체 도이체벨레(DW) 등에 따르면, 이날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노사협의회에서 “유럽의 자동차 산업이 몹시 어렵고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 내 최소 대형 완성차 생산 공장 1곳, 부품 공장 1곳의 폐쇄를 검토 중”이라고 통보했다.
그는 “새로운 경쟁자가 유럽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 내에 제조 공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뒤처지게 만든다”면서 “단순한 비용 절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고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외신은 폭스바겐의 이번 발표에 대해 “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가 유럽에서 공장을 폐쇄하는 최초의 제안”(파이낸셜타임스·FT)이자 “폭스바겐 87년 역사상 가장 큰 전략적 전환”(가디언)이라고 평했다. 독일 내에 볼프스부르크·브라운슈바이크·찰스기터 등 6곳에 공장을 두고 있는 폭스바겐은 창립 후 지금까지 독일 내 공장 문을 닫은 적은 한번도 없다.
中 BYD 급성장에 독일차 판매 부진
폭스바겐이 강조한 위기란 ‘중국 내 판매 부진’과 ‘전기차 전환’이다. 지난 40년간 중국 승용차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폭스바겐은 최근 점유율이 급락 중이다. 올 상반기 폭스바겐이 중국에 판매한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동기 대비 7% 감소했고, 이에 따라 영업이익은 11.4% 줄어 101억 유로(약 15조원)에 그쳤다. CNN은 세계 최대 규모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독일 자동차 판매량 급락이 유럽 사회 전체에 엄청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갑작스런 판매 부진 원인은 전기차, 특히 세계 1위 전기차 기업으로 성장한 비야디(BYD)에 밀려서다. 그간 폭스바겐은 세계 최고 수준인 내연기관 관련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브랜드와 합작해 현지 생산라인을 확대하며 시장을 장악해왔다. 하지만 전기차 등장과 함께 BYD 등 중국 토종 업체들이 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특히 BYD는 전기차 저가 공세를 주도하며 내수 시장을 손에 넣었다. 실제로 2020년 중국 내 해외 완성차 브랜드 점유율은 60%에 달했으나 지난해 40%대로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독일 자동차의 점유율도 20%에서 16%로 줄었다. 여기에 지난 7월 유럽연합(EU)이 중국 전기차를 대상으로 최대 48% 관세율을 부과하는 고관세 정책을 시행하면서, 중국 내 유럽 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더욱 쪼그라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폭스바겐, 전기차 전환 위한 '비용 절감'
폭스바겐은 뒤늦게나마 전기차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전환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값싼 러시아 에너지의 공급 중단과 중국 시장 판매 부진 등을 겪고 있는 독일은 이를 추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블루메 CEO는 지난달 “우리의 주요 목표는 비용 절감”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회사 경영진은 당초 2026년까지 100억 유로(약 14조8000억원)로 책정했던 비용절감 목표를 40억∼50억 유로(약 5조9000억∼7조4000억원) 상향할 계획이라고 한델스블라트는 전했다.
경영진은 1994년부터 유지해온 고용안정 협약도 종료하겠다며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폭스바겐은 세계에서 68만3000명을 고용했고, 이중 29만5000명이 독일에서 근무 중이다. 독일 매거진 슈피겔은 폭스바겐의 공장 폐쇄와 구조조정이 시행된다면 일자리 약 2만 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니엘라 카발로 독일 노사협의회 의장은 “수익성과 고용 안정성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수십 년간 합의에 경영진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우리 일자리와 노동 현장, 단체협약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산업노조(IG메탈)는 “폭스바겐의 근간을 뒤흔드는 무책임한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FT는 폭스바겐의 공장 폐쇄 및 구조조정 검토 발표에 대해 “이례적”이라면서도 “시작일 수 있다”고 전했다. 지금껏 유럽의 자동차 기업은 경영난에 봉착하면 직원의 교대 근무를 없애고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왔다. 하지만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입지가 쪼그라들고 있는 유럽 자동차 업계 현실을 고려할 때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매체는 설명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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