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해설 나선 '영혼의 단짝' 김경식·이동우 “함께 콘텐트 즐길 수 있어 기뻐”
“영상 함께 본 건 2003년 이후 처음이라 감사해”
지난 7월말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자막·더빙 전문회사 아이유노 사무실. 연예계 대표 단짝인 개그맨 김경식(54)과 이동우(54)가 성우가 된 것처럼 마이크 앞에서 녹음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들이 녹음 중인 프로그램은 17일 공개될 넷플릭스의 새 예능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다. 요리 연구가 겸 사업가 백종원과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 셰프 안성재가 심사위원을 맡았다. JTBC ‘싱어게인’·‘슈가맨’ 시리즈를 제작한 스튜디오슬램 작품이다.
두 사람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의 막바지 녹음 중이었다. 녹음실 화면에 심사위원 백종원이 참가자가 만든 요리를 맛보는 장면이 나오자, 김경식은 요리에 대한 설명부터 백종원이 맛을 보는 행동까지 세세하게 묘사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은 콘텐트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내레이션과 달리, 섬세하게 일관된 톤으로 설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경식은 22년째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영화 소개를 하고 있는 베테랑이지만, 화면 해설 마이크 앞에선 긴장한 모습이었다. “감정 과잉이라 다시 해볼게요”라는 감독의 말에 그는 특유의 유쾌함을 잠시 내려놓고 녹음에 몰입했다. 그는 “개그맨의 본능이 올라올 때마다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참았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차분한 감정을 유지하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 설명에서 발음이 꼬인 후 “먹어보지 않아서 발음이 안 된다”며 너스레를 떨 때는 개그 본능이 되살아났다.
이동우는 침착한 톤으로 녹음을 순식간에 끝냈다. 수정 녹음까지 모두 마친 뒤엔 김경식의 해설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려보는데 집중했다.
“백두산 천지를 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어느 날 백두산 위에 올라선 느낌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에게 화면 해설 방송이 주는 감동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동우는 2004년 망막색소변성증 진단 후 2010년 실명 판정을 받았다.
김경식과 이동우는 지난 4월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의 화면 해설 시사회 초청을 받은 인연으로 직접 해설까지 맡게 됐다. 둘이 함께 화면 해설 녹음을 한 건,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지난달 6일 공개) 이후 두 번째다.
이동우는 “화면 해설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었다. 해설 내용이 불친절하거나 이상하면 따끔하게 한 마디 하려고 참여했는데, 수정할 것도 없이 재밌게 상상하며 녹음했다”면서 “추석 때 ‘흑백요리사’를 시청자 입장에서 또 볼 예정”이라고 설레는 기분을 전했다.
이동우 “시각장애인에겐 불편한 예능”
이동우는 콘텐트 소비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선천적 실명이 아닌) 중도 실명이라 영상을 일단 틀어본다. 듣다 보면 답답하고 피곤하고 결국은 분노와 짜증이 솟구친다. 특히 장면 전환이 빠르고 여러 사람이 나오는 예능이 가장 답답하다. 소리로는 얼마나 재미있는 상황인지 알겠는데 이해가 되지 않으니 소음일 뿐”이라고 했다.
개그맨이지만 실명 후 예능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그는 "섬세하고 배려있는 화면 해설의 필요성을 느껴왔는데, 내가 참여할 기회가 닿아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시각장애인 등 미디어 약자를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콘텐트 제작에 적극적인 넷플릭스는 트레일러에도 화면 해설을 입혀, 이들의 콘텐트 선택에 도움을 주고 있다.
김경식은 “동우와 함께 영상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극장에서 함께 봤던 영화 ‘클래식’(2003) 이후 처음이다. 재미있는 콘텐트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친밀해진다고 하는데, 함께 영상을 즐길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고 밝혔다.
이동우는 “눈이 안 보이게 된 후 극장에 간 적이 있는데, 아내가 옆에서 해설을 해주다가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콘텐트를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식 “천사는 무슨... 동우는 마음 잘 맞는 친구”
김경식과 이동우는 최근 유튜브 채널 '우동살이'도 함께 운영하는 등 찰떡 호흡을 과시하고 있다. 둘은 20대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함께해 온 단짝이다. 1994년 그룹 틴틴파이브(표인봉, 이웅호, 홍록기, 김경식, 이동우)를 결성하고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도 함께 둥지를 틀었다.
김경식은 지난 4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절친 이동우의 실명 판정 이후 “평생 내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눈물 흘렸던 일화를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송 이후 그에겐 ‘천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김경식은 “천사는 무슨... 부담스러웠다. 갑자기 사람들이 좋게 보는 바람에 힘들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성인이 되어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동우가 그런 친구입니다. 제가 힘들 때 삐뚤어지지 않도록 저를 잡아주는 등 도움을 많이 줬죠. 덕분에 삶의 태도가 평온해졌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제가 동우를 더 절실히 필요로 하죠.”
이동우는 30년 넘게 알고 지냈다고 해서 누구나 김경식과 같은 절친한 사이가 되는 건 아니라고 거들었다. “중증 장애인이 되면 사람들이 떠나간다. 알고 지낸 세월과 상관 없이 서로가 만나고 싶고 만나야 하는 순간에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나와 동등한 눈높이에서 마음을 공유해주는 경식이가 있어 다행이다. 경식이는 나만의 천사”라고 말했다.
친구의 진심어린 찬사에 김경식은 "우리가 지금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에 감사한 순간을 잘 지키려 서로 배려한다"고 화답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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