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봐주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김은미 기자]
▲ 책표지 촉법소년 |
ⓒ 네오픽션 |
최근 촉법소년들이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형사미성년자 제도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고, 촉법소년 연령 하향 추진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소설 <촉법소년>은 '촉법소년 범죄'를 소재로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엮어낸 책이다. 김선미 '레퍼토리', 정해연 '징벌', 홍성호 '네메시스의 역주'(逆走), 소향 'OK목장의 혈투', 윤자영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섯 명의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른 각도로 소설은 전개된다. 사건의 피해자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자의 부모나 교사 등 주위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부분은,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법이 그들을 보호해 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고할 생각 마. 어차피 우리는 촉법소년이거든? 금방 학교로 돌아온다고. 무슨 뜻인지 알지? 법이 우리를 봐준다고"라고 말하는 소년의 말에서,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못한 범죄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사죄조차 하지 않는 사라진 양심에 대해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 독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어 절망적인 마음을 품게 된다.
이 책 수록된 정해연 작가의 소설 <징벌>에서는, 2045년 촉법소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하기 위한 제11호 처분, '정신 징벌'이 제정되었다는 가상의 설정을 한다. 정신 징벌 대상자는 징벌 포켓에 들어가 자신이 벌인 일을 똑같이 당하고, 미래까지 엉망이 되는 경험을 한다(65쪽)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가해자의 인권 따위를 우위에 두지 않기로 했어요"라고 말하는 연구진의 단호함에서 촉법소년에 대한 범죄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모르고 저지른 범법행위와 고의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 동일한 법의 잣대로 처벌 수위를 정한다면 앞으로 더욱 심각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최근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 딥페이크 범죄에 초등학생들이 가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중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보호 처분을 받고 교육 현장에, 사회에 복귀하게 될 텐데 그들을 용서하고 품어주는 것이 옳은 일일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소향 작가의 <OK 목장의 혈투>에서는, 청소년을 보호해 줘야 할 어른들이 그들의 범죄를 오히려 부추겨 온 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청소년의 약점을 이용해, 결핍을 이용해 범죄에 노출시키는 나쁜 어른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들이 바른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벗어나고 싶다고, 구해달라고 무수히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거나 모른척했던 어른들이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방법을 모색한들,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현실은 소설속 이야기들보다 더 심각하고 끔찍할지도 모른다. 제도적으로든, 인문학적 관점으로든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어 청소년들을 위험에서 구출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청소년들이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안온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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