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서 열린 '힙한' 군산북페어, 모두가 놀라다
[김규영 기자]
"그래, 지금 집 앞에 있는 거야."
▲ 군산회관이 힙하다 텍스트힙(TEXT Hip)이라는 신조어가 아니어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군산 생활권, 나운동에 들어왔다. |
ⓒ 김규영 |
지역 중소도시의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 책에 대해 진심인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군산에서 텍스트 힙(Text Hip)이 터졌다. 환하게 상기된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축제의 현장이 바로 자기 집 앞이라는 사실에 아이는 놀라워했다.
군산북페어의 성황에 놀란 사람은 아마도 아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도 당일 새벽까지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전전긍긍하던 운영진, 대도시가 아닌 군산의 첫 행사에서 얼마나 팔릴까 싶어 보따리에 책을 넣었다 뺐다 했을 100개의 부스 참가자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군산 우리 동네에서 책잔치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껏 흥분하던 나 역시, 이 정도 인파와 호응은 예상하지 못했다(관련 기사: 요즘 군산에선 '거기 가시죠?' 인사가 유행입니다 https://omn.kr/29z31 ).
▲ 북마켓 전경이다. 3층 아카이브 전시실에서 찍은 2층 북마켓의 모습이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듯이 사람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
ⓒ 김규영 |
나는 그 소문을 들은 덕분에 사인도 받고 대화도 나누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에만 눈길을 주고 있어서 그를 보고도 못 알아보고 스쳐 지나갔다. 역시 신작 소설(<참 좋았더라>)의 짧은 사인회를 마친 김탁환 작가가 북마켓 로비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양해요. 참여한 부스도 그렇고 찾아온 사람들도 그렇고. 여러 연령의 사람들이 고르게 퍼져 있네요. 여기 공간도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2층 북마켓은 한 번도 한산한 때가 없었다. 다양한 주체로 구성된 100개의 부스는 모두 특성과 성격이 달라 누구든 자기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부스를 만나게 된다. 눈길을 끄는 부스 앞에서 걸음이 느려지면 부스 지킴이는 편하게 살펴보라며 책에 대해 설명한다.
조심스레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열정적으로 이어져 잠시 그들만의 순간이 된다. 책을 살피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을 구매하느라 멈춰서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두 사람이 어깨를 닿지 않고 다닐 수 있었던 통로가 점점 더 좁아진다. 어느 구역은 정체 현상이 일어나 아예 발이 묶이기도 했다.
좁았다. 그만큼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찾은 것이다. 내년에는 더 원활한 통행이 가능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혹시나 더 큰 성공을 위해 내년에는 체육관 같은 넓은 자리와 천막 단위의 부스로 크기를 늘리자는 제안이 나오진 않을까 염려된다.
큰 공간은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한산함과 거리감을 준다. 다만 그 경우 지금처럼 테이블 부스를 사이에 놓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활발하고 동등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 군산북페어 진행한 '군산회관' 현재 입구 군산시 나운동 대학로에서 건물 내부로 바로 진입이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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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군산북페어에서 봉사자로 참여한 이은아씨도 과거 이곳에서 학예회를 했다면서 그때의 계단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토크: 우리 시대 책의 의미는?>에 참여한 군산 출신의 조예은 소설가도 "망해버렸다고 생각한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 군산회관 지하통로 계단 아래의 공간을 미디어 아트로 활용하고 있다. 큰길에서 건물 내부 강연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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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군산회관은 큰길의 계단 중앙을 헐어 만든 지하통로를 통해 본관으로 바로 갈 수 있다. 휠체어와 유아차를 이용하는 교통약자에게는 혁명적인 개선일 것이다. '지하통로' 바닥에는 군산북페어 포스터가 움직이는 영상과 건물로 향하는 점자 블록이 뻗어 있다.
노랑 블록을 따라간 곳에는 2층 북마켓으로 바로 이어지는 낮은 경사의 넓은 계단면이 있다. 이 곳에서는 책보다 공간을 탐색하는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 특별대담: 황석영 작가와 류보선 문학평론가 깊게 숙고하고 성실하게 준비한 특별대담이었다. |
ⓒ 김규영 |
"사람의 삶 자체가 서사이므로 서사는 위기가 없다. 다만, 서사를 담는 그릇인 매체, 미디어가 변화하는 것이다."
"자기 컨텐츠가 없다는 허기를 느낀 사람들이 다시 책으로, 고전으로 돌아오게 된다."
1부 소개, 2부 황석영과 책의 역사, 3부 황석영의 문학과 문학의 운명 등으로 구성된 특별 대담은 어디에서도 듣기 어려운 깊이 있고 단단한 내용이었다. '책의 위기'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거장의 말씀은 큰 깨달음이자 응원이 되었다.
황석영 작가와 류보선 문학평론가의 진지한 태도는 군산북페어의 무게추가 되어 주었다. 객석은 여러 번 웃으며 즐거워했고, 중간 박수를 터트리며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 군산북페어 낭독회 시인들의 낭독회는 2층 로비에서 진행되었다. 아무런 악기가 없어도 음악이 로비의 높은 공간으로 퍼지는 듯 했다. 시는 노래였다. 문학을 통해 '군산'을 불러온 아름답고 아늑한 낭독회는 재공연이 있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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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북페어 서점 토크 동네서점 대표 4인의 토크로 진행되었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통영의 봄날의책방 정은영 대표는 책을 좋아한다면 책방을 열라고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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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공간이 많아지면,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세상은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1층 전시장에서 진행된 연계 토크 <펼친 면의 대화>에서 전가경 디자인 저술가는 정합성이 있는 의미의 무거운 책을, 박소영 열화당 북디자이너는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 오래 남을 책을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 군산북페어 워크숍 현장 진(zine) 바인딩 워크숍 신청은 제일 먼저 마감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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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라는 그 하나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있다는 사실이 감동이었어요."
▲ 군산북페어 현장 마지막날 입장을 위해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
ⓒ 김규영 |
작가와 독자, 판매자와 구매자, 독립출판과 상업출판, 작가와 편집자와 북디자이너, 서점과 도서관, 지역과 지역, 일상과 축제, 책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군산북페어는 이렇게 진수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제 출항할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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