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멀티레이블의 한계…“경영 간섭” 소통 부재에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2024. 9. 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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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방정식 깨졌나...흔들리는 K-엔터 [스페셜리포트]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걸그룹 뉴진스(사진 위) 표절 논란을 제기했던 신인 걸그룹 아일릿(아래). 모두 하이브 산하 레이블의 걸그룹이다. (어도어, 빌리프랩 제공)
K엔터 성공 비결이었던 ‘멀티레이블’ 체제가 오히려 국내 기획사 발목을 잡기도 했다. 김민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폭발적인 앨범 판매량 성장 이후 피크아웃에 대한 우려, 멀티레이블 관련 리스크 부각 등 시장 피로도가 증가하면서 엔터 4사 주가가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엔터업계에서 멀티레이블은 모기업 아래에 레이블을 자회사 형태로 여러 개 두는 형태다. 원래 ‘레이블’은 음반을 만들고 유통하는 회사를 의미하지만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사업과 음악 제작이 함께 가는 K팝 기업 구조상 국내에서는 소속사 개념으로도 쓰인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시작한 하이브는 과거 BTS에만 의존하던 매출 구조에 변화를 주기 위해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했다. 이후 방탄소년단(빅히트뮤직, 이하 소속 레이블), 뉴진스(어도어), 세븐틴(플레디스) 외에 올 들어 투어스(플레디스), 르세라핌(쏘스뮤직), 아일릿(빌리프랩), 투모로우바이투게더(빅히트뮤직)와 보이넥스트도어(KOZ엔터테인먼트)가 앨범을 내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 결과 한때 90%대였던 BTS의 매출 기여도는 올해 30%대까지 떨어졌다. 에스엠 역시 지난해 이수만 프로듀서와 결별하며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를 선언했다. JYP엔터도 2018년부터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했다.

기획사의 리더 한 사람이 모든 아티스트를 관리하던 과거 에스엠·JYP엔터·와이지 시스템에서는 한 번에 한두 아티스트만 활동할 수 있었다면 이런 멀티레이블 구조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여러 아티스트가 동시에 활동할 수 있어 수익 극대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모회사 입장에서는 각 레이블이 자회사로 분리돼 있으면 특정 아티스트에 쏠리는 실적 의존도를 줄이고 레이블별 성과를 명확히 할 수 있어 경쟁 유도와 외부 투자 유치가 쉽다. 산하 레이블 입장에선 일찍 업계에 자리 잡은 모회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을 무기로 멀티레이블 체제는 K팝 기획사들이 외연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민희진 대표와 모회사 하이브의 갈등이 이어지며 K팝을 키워낸 멀티레이블 시스템의 한계가 공공연히 드러났다.

멀티레이블은 모회사와 의사소통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내부 경쟁이 극심한 레이블끼리는 모회사조차 아티스트의 콘셉트나 활동 계획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모회사가 레이블에 경영 전략을 전달하면 레이블 측에선 경영 간섭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지난 2월 어도어는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대표이사 단독으로 ‘뉴진스의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이 담긴 주주간계약서 수정안을 하이브 측에 보내는 등 경영 독립을 위한 다양한 요구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엔터업계 관계자는 어도어와 하이브 간 갈등은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멀티레이블 체제의 공통적인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그는 “레이블을 전문경영인이 아닌 아티스트가 주로 맡아 경영하다 보면 모회사의 경영적인 판단과 충돌하거나 레이블 간 기 싸움이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어 “멀티레이블은 색깔 다양한 아티스트를 키워내고 모회사도 키우는 방법이지만 결국은 돈, 즉 수익이 목표라 레이블 간 무한경쟁이 발생하고 내부통제가 어려운 한계에 부딪힌다”고 지적했다.

버리지 못하는 ‘K팝 방정식’

‘공장식’ 아이돌 찍어내기 여전

이런 일련의 충돌과 기 싸움이 멀티레이블 체제가 자리 잡는 과정이라 하더라도, 아이돌그룹이 중심인 K팝 시장에선 개성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멀티레이블을 해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대중음악 산업의 역사가 긴 서구에서는 실력 있는 아티스트와 뜻이 맞는 레이블 회사가 만나 음반을 내는 등 멀티레이블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테면 유니버설뮤직 산하 아일랜드레코드는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를 배출했고 에이미 와인하우스, 뮤즈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 음반을 발매했다. 마이크 올드필드, 섹스 피스톨즈 등의 전설적인 음반을 낸 버진레코드는 록을 비롯한 대중음악 분야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멀티레이블 체제를 안착시킨 이들 글로벌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면 레이블마다 정체성이 확고하고 겹치는 영역이 없다.

반면 아이돌그룹이 중심인 국내 대중음악 산업은 역사가 짧고 외연이 넓지 않다. 소비층은 젊은 층에 한정돼 있다. 콘셉트가 비슷하다는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멀티레이블 체제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K팝이라는 장르 안에서 벗어나지 못해 카니벌라이제이션(기업 내 레이블 간 잠식 현상)이 나타난다는 평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표한 ‘2024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류에 대한 부정적 의견의 이유 중 22%가 ‘획일적이고 식상함’으로 꼽혔다.

콘셉트가 서로 비슷하다 보니 레이블별로 내부 경쟁이나 갈등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하이브는 최근 3년 내 세 개 이상의 걸그룹을 데뷔시켰다. 뉴진스(어도어), 르세라핌(쏘스뮤직), 아일릿(빌리프랩) 모두 하이브라는 한 지붕 아래 다른 가족들이다.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아일릿이 뉴진스 콘셉트를 베꼈다”거나 “하이브 경영진이 뉴진스를 서자 취급하고, 방시혁 의장이 프로듀싱하는 레이블의 아티스트를 밀어주는 ‘군대 축구’식 경영을 했다”고 토로한 배경에도 국내 멀티레이블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에 있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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