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연속 金자탑, 병마·화마·부담감 이겨낸 '에이스' 정호원이 있었다 [패럴림픽]
윤승재 2024. 9. 3. 07:35
보치아가 패럴림픽 10회 연속 금메달 금자탑을 쌓았다. 그 중심엔 정호원(38·강원특별자치도장애인체육회)이 있다.
정호원은 3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아레나1에서 열린 보치아 남자 개인전(스포츠등급 BC3) 결승에서 호주의 대니얼 미셸을 4엔드 합산 점수 5-2(3-0 1-0 0-2 1-0)로 꺾고 우승했다.
정호원의 우승으로 한국 보치아는 패럴림픽 10회 연속 금메달 획득 금자탑을 쌓았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을 시작으로 이번 대회까지 빠짐없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패럴림픽에서 얻은 금메달을 11개로 늘렸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보유하고 있다.
정호원이 명맥을 이었다. 정호원은 패럴림픽에서만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며 명실상부한 보치아 에이스로 군림했다.
2016 리우 대회에선 홀로 결승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에 결승전 전날 심한 열병을 앓은 정호원은 해열제를 맞고 출전해 우승한 뒤 펑펑 울었다.
2020 도쿄 대회에서도 정호원은 9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한국 선수단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하는 데 그쳤는데, 그중 하나를 정호원이 따냈다.
이번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소영(35·충남장애인보치아연맹)과 정성준(46·경기도장애인보치아연맹)이 각각 여자개인 스포츠등급 BC2, 남자개인 스포츠등급 BC1 결승에 진출했지만 모두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호원이 심한 압박감을 이겨내고 다시 한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후 정호원은 "내가 그동안 표현을 안 했지만, 매우 큰 부담감에 시달렸다"며 "매우 힘들었는데, 금메달을 따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1998년 보치아를 시작한 정호원은 2002년 부산 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현 APG)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이후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세계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 뒤에는 가족의 힘이 있었다. 1986년 어머니 홍현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정호원은 그해 큰 사고를 당해 뇌병변 장애인이 됐다. 어머니 홍 씨가 지하철역에서 매점 일을 했는데,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바닥에 떨어져 충격을 받은 것.
1995년엔 가정에 큰 풍파가 일었다. 원인 모를 화마가 집을 덮쳤고, 형 정상원 씨는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어머니와 형의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면서 가정이 크게 흔들렸다.
이때 정호원은 보치아를 접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려했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보치아를 이어갔다. 보치아는 정호원과 그의 가족에게 희망 그 자체였다.
그렇게 정호원은 매일 꿈을 담아 공을 굴렸고, 한국 장애인 스포츠 영웅이 됐다.
정호원은 "어머니가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최근 일부러 연락을 안 하셨다"며 "파리로 떠나기 전에 마음 편하게 하고 오라고 말씀하셨는데, 금메달을 갖고 돌아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파리=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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