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임종룡號]③우리금융 노사는 '유착'…과점주주는 '탈출'

유제훈 2024. 9. 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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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금융사고에도 노조 ‘조용’...노조 지도부는 승승장구
이사회도 손태승 부당대출 보고 못 받아…견제기능 미흡
편집자주
우리금융그룹이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로 또 이슈의 중심에 섰다. 다른 은행들에 비해 수백억 원대 횡령, 자금유용, 배임 등 각종 역대급 금융사고가 빈발하는 이유는 뭘까. 다른 은행들은 시스템 밖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일탈 문제가 크지만, 우리금융은 오랫동안 누적된 조직문화가 핵심 원인이라는 게 아시아경제의 판단이다. 우리금융의 잘못된 조직문화를 집중 조명하고, 기사로 노출시킴으로써 우리금융이 환골탈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시리즈를 시작한다. 아시아경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금융의 조직문화 문제를 기사로 다룰 계획이다.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서 회사 신뢰도를 좌우할 대형 금융사고가 해마다 터져 나오고 있지만, 사내에서 이를 감시·견제하는 적극적인 흐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때 이상적인 지배구조로 알려졌던 과점주주 연합은 손태승 전 회장 부적정 대출사고 과정에서 공식적인 보고조차 받지 못했고, 노동조합 또한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상황이다.

금융권에선 과거 공적자금 투입으로 낙하산·연줄 문화가 뿌리 깊게 내린 데 따른 부작용으로 사측과 노조가 일종의 유착관계를 형성하게 된 점, 과점 주주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만큼 적극적인 경영 개입보다는 엑시트(차익 실현)를 통한 수익실현에 집중하고 있는 점 등을 내부 감시·견제 부재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힘센 노조, 승승장구 와중에…견제구는 미약

금융권에선 노조의 경영진 감시·견제가 다소 미약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우리은행을 뒤흔든 김해지점 대리급 직원의 180억원대 횡령사고,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와 관련해서도 회사의 신뢰를 좌우하는 사안이건만 별반 큰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특히 2020년엔 금융감독원이 손 전 회장에 대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F) 사태의 책임을 물어 중징계를 내리자 당시 노조는 오히려 “내부통제와 관련한 법적 처벌 근거가 없음에도 최고경영자(CEO)에 책임을 묻는 것은 권한 남용”이라며 경영진 옹호에 나서기도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후일 외부 출신 ‘낙하산’이 내려올 수 있단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당시 노조위원장이 손 전 회장과 친한 사이로 사측에 우호적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감시·견제 대신 경영진과 과도하게 밀착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내놓는다. 일례로 현임 9대 위원장(박봉수 위원장)을 제외하면 2011년 이후 노조 위원장을 지낸 인물 4명의 경력을 보면 요직을 거쳐 임원으로 영전하는 일관된 흐름이 보인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재임한 5대 위원장의 경우 퇴임 이후인 2014년 대치북지점장(현재는 폐점)으로 발령받았고, 2016년 강남대로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21년부터는 우리금융 자회사인 우리금융저축은행 이사로 영전해 봉직 중이다. 6대 위원장도 2017년 강남권에 위치한 신반포금융센터장을 거쳐 2021년부터는 우리금융저축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본부장직을 수행 중이다. 7~8대 위원장 역시 임기를 마친 뒤인 2023년 법조타운금융센터장으로 발령받았다.

은행권에 따르면 통상 강남 일대 지점·센터의 경우 서울 사대문 내에 위치한 지점·센터를 제외하면 행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자리로 꼽힌다. 법조타운 역시 거액의 법원 예금을 관리하고 핵심 예금(저원가성 예금)을 유치할 수 있어 은행 경영에 기여하는 바가 큰 자리란 평가를 받는다.

익명을 요구한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 노조 지도부 임기를 마치면 대부분 센터장, 본부장 등으로 사실상 승진이 보장되는 자리로 배치를 받고 길게 보면 임원에도 오른다. 일반 행원이 은행장과 독대할 수 있는 지위가 몇 자리나 되겠느냐”라며 “얄궂게도 노조 지도부와 사이가 좋을 리 없는 (노조 위원장 선거) 낙선자도 승진시켜 위협을 줄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힘센 노조’는 은행 밖에서도 익히 알려진 얘기다. 한 은행 노조 관계자는 “금융산업노동조합 회의를 가보면 이전의 우리은행 노조는 다른 노조와 분위기가 다르다. 노조위원장이 마치 행장 같은 분위기로 노조 집행부의 의전도 받더라”라며 “옛 우리금융지주 산하에 있던 회사들도 경영진과 노조가 밀접하다든지 하는 유사한 분위기가 있는데,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와중에 외풍을 강하게 받다 보니 생긴 문화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과점주주도 ‘견제’ 대신 ‘탈출’

경영진을 감시할 제1선이 이사회란 측면에서, 우리금융 이사회를 구성하는 과점주주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들 역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물밑에선 수년 전부터 부적정 대출에 대한 소문이 은행은 물론 지주에도 파다했고, 일부 내용은 이사회까지도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의 손 전 회장 부당대출 사건 관련 1차 감사 결과에서도 이사회와 과점주주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들 과점주주를 대표한 이사회는 손 전 회장 친인척 부적정 대출사고 당시에 자체 감사 및 징계를 마친 지난 4월까지도 관련한 구체적 보고를 받지 못했다. 금감원이 별도의 제보를 통해 검사를 개시하자 5~6월께가 돼서야 이를 간략히 전달했을 뿐이다.

금융감독당국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추가 자료를 내 “지난해부터 사외이사 간담회 정례화, 지배구조 모범 관행 발표 등으로 이사회 기능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해 왔다”면서 “이런 우리금융의 행태는 그간 금감원과 은행권이 공동 추진해 온 지배구조 개선 취지와 노력이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초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으로 제시된 과점주주 체제는 은행 지배구조 문제에 있어 이상적인 대안으로 꼽혔다. 과점주주 체제 형성을 주도한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금융위원장 시절 이와 관련해 “다양한 성격의 과점주주들이 기업가치 제고라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집단지성과 경험을 통해 합리적인 경영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점주주들이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경영에 간여하던 사이 우리금융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4대 금융지주회사 중 4위로 주저앉은 것은 물론 DLF 사태, 채용 비리 의혹, 기업개선부 700억원대 횡령사고, 김해지점 대리 180억원대 횡령사고, 손 전 회장 친인척 부적정 대출사건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대신 일부 과점주주들은 엑시트를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과점주주 목록을 보면 키움증권(3.73%), 한국투자증권(3.77%), 유진프라이빗에쿼티(4.0%), 대만 푸본생명(3.97%), IMM인베스트먼트(1.4%) 등이 포진해 있다. 2016년과 대비하면 동양생명·미래에셋자산운용·한화생명이 지분매각을 통해 이탈했고, IMM PE는 지분율을 8년 새 6.0%에서 1.4%로 축소하며 영향력을 줄이고 있다.유진PE와 푸본생명만이 우리금융의 완전 민영화를 위한 백기사로 등장하면서 과점주주 명단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금융권에선 서로 다른 업권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과점주주가 동등하게 4%의 균일한 지분을 가진 데서 나온 한계란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특히 이들 역시 금융시장 내에선 관(官)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예컨대 역시 과점주주 체제가 형성된 신한금융의 경우 국민연금공단(8.26%), 블랙록(5.71%) 등도 있지만 실질적으론 재일교포 주주들로 구성된 간친회(懇親會)가 15~17%(추정)의 지분을 갖고 사실상 과점주주 체제를 주도하고 있다.

배현기 전 하나금융연구소장은 “과점주주 간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재무적 투자자들은 충분히 이익을 실현했다고 보고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고 전략적 투자자들도 주주연합을 유지할 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으니 비켜서고 있는 것”이라며 “처음엔 과점주주들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CEO와 직원들에 대한 내부통제를 잘할 수 있으리라고 봤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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