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없이 센강 역영, '감동의 1시간 20분' 당당한 10위 김황태 "꿈을 이뤄 행복합니다" [패럴림픽]
윤승재 2024. 9. 3. 06:05
유속 세고 수질 나쁜 센강을 양팔 없이, "두렵지 않다"는 마음가짐으로 건넜다. 김황태(47·인천시장애인체육회)가 '아름다운 10위'로 꿈을 이뤘다.
김황태는 2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센강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PTS3 등급)에 출전, 수영(750m) 사이클(20㎞) 달리기(5㎞) 코스 합산 1시간24분01초만에 완주했다. 전체 11명 중 10위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아쉬울 법도 한 결과였지만, 김황태는 경기 후 환하게 웃었다. 그는 “대회가 하루 연기되면서 부담이 적지 않았는데, 무사히 센강을 헤엄쳐 나와 다행이다”라며 “좋은 결과로 완주한 게 너무 좋고, 행복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사실 김황태의 이번 대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단 일정이 갑자기 하루 미뤄졌다. 트라이애슬론은 당초 9월 1일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월드트라이애슬론이 1일 오전 수질검사 후 센강의 박테리아 수치가 급증했다며 대회를 2일로 미뤘다.
이튿날(2일) 경기는 개시됐지만, 김황태가 가장 우려했던 건 수영이었다. 이 종목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양팔이 없어 발과 허리로만 수영을 해야 하는 그에게 유속이 센 센강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영법 변경으로 돌파했다. 김황태는 "원래 자유형과 평영을 섞어서 하는데, 이러면 센강 유속을 헤쳐나가기 어렵다. 오늘은 배영을 70% 이상 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틀 전 사전 연습 때 내가 두려움이 많아 (센강에 뛰어 들길) 주저하니 김정호 감독님이 직접 센강에 뛰어 들어 나와 함께 헤엄쳐줬다”며 “덕분에 심적인 안정을 되찾고 두려움 없이 유속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사이클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사전연습 때부터 의수의 팔꿈치와 손목 부분이 고장나 수리를 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연습 과정에서 손목 잠금장치까지 고장이 나버렸다. 결국 이날은 고장난 부위를 케이블 타이로 꽁꽁 묶고 사이클을 타야 했다.
김황태는 “코스 자체에 코블 코스(중세의 마차들이 다니기 위해 만든 돌이 깔린 길)가 70% 정도 된다”며 “(울퉁불퉁한) 바닥에 집중해야 하는데 손이 이탈하거나 손목을 고정한 게 풀릴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김황태의 사이클 구간별 기록은 초반 5위에서 갈수록 6~9위로 밀렸다.
하지만 김황태는 육상에서 반전을 일궜다. 10위로 달리던 호주 선수를 제치고 꼴찌에서 탈출했다. 그는 “사실 그 선수를 제칠 생각은 없었다”며 “나보다 2살 많은 형님인데, 몸이 좀 안좋아 보여 같이 들어오려다 (그는) 한 바퀴가 더 남았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달려왔다”라고 설명했다.
대회를 마친 김황태는 트라이애슬론을 하는 내내 자신의 ‘핸들러(경기보조인)’ 역할을 자처해준 아내 김진희 씨를 향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황태는 2000년 전선 가설 작업을 하다 고압선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었다. 아내 김진희 씨는 사고 이후 남편의 양팔이 되어 그를 도왔고, 운동을 시작한 뒤에도 경기보조인으로 나서 남편의 첫 패럴림픽 무대도 함께 했다.
김황태는 “내가 다치기 전부터 다친 후, 그리고 지금 이 순간과 앞으로 미래까지 내 옆에서 나의 팔이 되어준 아내가 너무 존경스럽고 고맙다”며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눈물을 쏟아낸 그는 “나 때문에 아내가 너무 헌신적으로 살았다”며 “아내가 힘들어 하는데도 내가 내 꿈만을 쫓아 여기까지 왔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털어놨다.
꿈의 무대를 마친 그는 약 한 달간 아내와 달콤한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김황태는 “9년 여간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살아온 아내에게 이제 여유를 주고 싶다”며 “다음 대회 준비를 위한 10월 합숙 전까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진희 씨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남편이 완주하고 올 때마다 쾌감과 함께 보람도 많이 느꼈다”며 “그래도 이제 안 다치고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패럴림픽 마치면 운동을 즐기며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황태는 출국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올림픽·패럴림픽 무대를 밟는 최초의 대한민국 트라이애슬론 선수라고 들었다. 대한민국의 장애인도 이렇게 힘든 종목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진 바 있다. '당당한 10위(최하위)'를 다짐하며 나선 대회에서 포기하지 않고 완주, 대한민국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윤승재 기자·파리=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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