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 “뮤지컬 데뷔 20년…지난해 번아웃 겪고서 무대가 즐거워졌다”
“저도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고 자란 세대인 만큼 오스칼에 대한 환상이 있거든요. 그래서 관객의 환상을 깨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오스칼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10월 13일까지 충무아트센터)에서 주인공 오스칼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김지우가 2일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혔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순정만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일본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왕용범이 대본과 연출을, 이성준이 작곡을 맡은 창작뮤지컬이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귀족 출신 남장 여인 오스칼의 이야기를 그렸다.
김지우는 “딸이지만 아들처럼 길러져 군인이 된 오스칼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검술이나 제식을 할 때 여자처럼 보이는 느낌을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하는 한편 남자 배우들에게 군인 발성에 대해 조언을 얻기도 했다”고 작품 준비 과정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중성적인 이미지의 오스칼을 연기해야 하는데, 무의식중에 여성스러움이 나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왕용범 연출가가 ‘오스칼은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남자처럼 보이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강인한 군인이라는 것을 명심하면 된다. 여군들이 남자인 척 하는 거 아니지 않나’라고 조언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원작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는 오스칼과 함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주인공이다. 또한, 오스칼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연인인 페르젠 백작을 짝사랑하다가 뒤늦게 앙드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의 서사를 뺐다. 원작이 방대하다 보니 오스칼과 앙드레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오스칼이 프랑스혁명 당시 시민군 편에 서는 내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 애호가로부터는 불만의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김지우는 “원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창작진도 고민 끝에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을 뺐다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그만큼 오스칼과 혁명에 집중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오스칼을 연기하는 배우로서는 귀족인 오스칼이 시민 편이 되어가는 심경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보여줘서 좋았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에서 꾸준히 공연되어온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을 중심으로 프랑스혁명 당시의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그 시대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서로 다르지만 보완적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에서 김지우는 옥주현, 정유지와 함께 오스칼 역에 트리플 캐스팅됐다. 같은 역할을 세 명이 번갈아 가며 연기하는 만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김지우는 “세 명의 해석과 연기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비교해서 보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다”면서 “내가 느끼기에 주현 언니는 강인하지만 뒤에서 우는 엄마 같다면 유지는 풋풋해서 안아주고 싶은 소년 같은 매력이 있다. 나는 처음엔 다듬어지지 않았다가 점점 정제되는 캐릭터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배우 데뷔한 김지우는 2005년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로 뮤지컬을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무대에 선 김지우는 이제 한국 뮤지컬계의 간판 여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성장했다. 유명 쉐프 레이먼 킴과 결혼해 딸을 낳았던 2014년을 제외하면 매년 평균 2편 정도에 출연했다.
김지우는 “지난해 상반기 뮤지컬 ‘식스’를 공연하던 도중 갑자기 멍해지며 노래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그 이후 무대에 올라가는 게 두려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완전히 번아웃 돼서 공황장애의 초기 상태였던 것이다”면서 “이후 출연하기로 했던 작품을 취소한 뒤 6~7개월 가족과 함께 휴식에만 집중했다. 그러는 동안 내가 그동안 무대에 서면서 걱정과 고민으로 작품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올해 다시 무대에 돌아온 김지우는 ‘프랑켄슈타인’ ‘베르사유의 장미’ ‘킹키부츠’에 잇따라 출연하고 있다. 번아웃을 극복하며 작품을 즐기기로 마음먹은 덕분인지 그는 요즘 무대에 서는 것이 편안해졌다. 그는 “물론 무대에서 모든 것을 쏟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면 기진맥진하다. 하지만 온전하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무대에 서기 때문에 공연을 하는 것이 너무 재밌다. 행복한 마음으로 극장과 연습실을 오간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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