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이어 이젠 구글까지…TSMC, 삼성 고객사 줄줄이 빼간다 [반도체 패키징 혁명]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61%를 차지하는 TSMC의 핵심 경쟁력은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43%. 메모리 칩을 거의 생산하지 않고도, 애플·엔비디아·구글·MS 같은 빅테크를 모두 고객으로 두고 있다.
지금의 TSMC를 만든 건 15년 전의 과감한 투자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한 번 은퇴했다가 2009년 다시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했는데, 대만 서적 『TSMC, 반도체 섬의 빛』에 따르면 이때 시작한 게 첨단 패키징 투자다. 창 CEO는 패키징을 키우자는 장상이 당시 연구개발(R&D) 총 책임 부사장의 건의를 수용했고, 반대하는 사외이사들을 하나씩 설득해 2010년 자본 지출을 전년도의 두 배로 늘렸다.
결실은 5년 후부터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제조하던 애플 아이폰용 칩을 2014년 TSMC가 나눠서 만들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는 TSMC가 전량 끌어갔다. TSMC의 모바일 칩용 패키징 기술(InFo) 덕에 칩의 발열·전력 제어 성능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구글이 내년에 출시할 스마트폰 픽셀10 시리즈용 칩도 TSMC에 맡겨 InFo 패키징을 적용할 거라는 예상이 업계에서 흘러나온다. 현실이 된다면 TSMC가 패키징으로 연달아 삼성 파운드리의 대형 고객을 빼앗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CEO 직속 첨단 패키징(AVP) 팀을 만들었다가 최근 해당 팀을 파운드리 사업부와 기존 패키징(TSP) 팀으로 흡수하는 개편을 했다. 업계에서는 ‘사내 우선순위에서 첨단 패키징이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회사 측은 “기술 조직을 집중해 운영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TSMC의 첨단 패키징은 산업 전반에 낙수 효과를 일으켰다. TSMC의 물량을 나눠 받은 대만 ASE는 세계 1위 반도체 후공정 업체가 됐고, TSMC가 고성능 컴퓨팅 칩에 적용하는 패키징 CoWos 공급망에 속한 멀리·올링테크 같은 대만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110%, 140% 올랐다. 지난해 세계 OSAT(패키징·테스트 외주) 상위 20위 중 10곳이 대만 기업이다.
지난 6월 포브스가 발표한 ’글로벌 기업 2000’ 목록 안에 대만 반도체 기업은 6곳이 이름을 올렸다. 제조의 TSMC(2014년 190위→2024년 45위), 설계의 미디어텍(1029위→573위), 패키징의 ASE(1169위→770위) 모두 순위가 10년 새 대폭 올랐고, UMC·WT·노바텍 등이 신규 진입해 생태계 역동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기업은 10년 전이나 올해나 삼성전자(22위)와 SK하이닉스(574위)만 겨우 이름을 올렸다.
생태계의 격차는 전체 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수출 시장 점유율(수출액 기준)은 2018년 이후 5년 연속 떨어졌고, 메모리 수출 점유율마저 29.1%(2018)에서 18.91%(2022)로 하락했다. 반대로, 대만은 이 기간 메모리 수출 점유율이 계속 올라갔다. 정형근 선임연구위원은 “대만은 자체 메모리 생산이 거의 없고 한국에서 수입한 메모리를 패키징해 수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만 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높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中 패키징에도 쫓기는 韓
중국은 지난 2021년 ‘중국 제조 2025’의 주요 분야로 반도체 패키징을 추가했다. 특히 미국의 제재로 장비 수입이 제한되자 패키징 장비 국산화에 주력해 왔다. 첨단 공정을 개발에 제동이 걸리자 후공정 기술을 통해 기술 격차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한 국내 장비업체 임원은 “삼성과 하이닉스에 HBM 패키징 장비를 납품하는 국내 회사들에 중국 기업들이 연락해와서 ‘항공권, 숙박료 다 제공할 테니 중국으로 와달라’고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중국 내 판매를 위한 합작법인을 세우자고 하고, 그 다음에는 유지 보수를 위해 조립하는 법만 알려 달라고 하다가, 결국 기술을 다 빼간다는 것.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본을 패키지 기업 육성에 쏟고 있다. 중국 외주 후공정 업체인 JCET은 지난 2015년 중국 정부 반도체기금의 지원을 받아 싱가포르 업체 스태츠칩팩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세계 시장 순위를 6위에서 3위로 끌어올렸다. 2016년에는 중국 통푸마이크로(TFME)가 AMD의 중국·말레이시아 패키징 기지를 인수했고, 현재 세계 4위가 됐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 아래 산업의 양적 질적 성장을 빠르게 이뤄낸 것이다.
박해리·심서현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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