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로스쿨이냐? 달랑 2명과 수업" 법학교수회장의 탄식

한영익, 최서인 2024. 9.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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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 한국법학교수회장이 2일 서울대 법학도서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 20240902 / 김현동 기자

2009년 3월 개원한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올해 만 15년을 맞았다. ‘다양한 대학 학부 전공자를 대상으로 전문적인 법학 교육을 통해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게 로스쿨 도입 취지다. 시험에 매몰된 법학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것도 도입 목표의 하나였다. 로스쿨 1기생부터 로스쿨 졸업자에게만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한 건 그 때문이다. 1963년부터 법조인 배출을 담당했던 사법시험은 축소되다가 2017년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5년간 법학 교육 현장은 정상화됐을까. 2일 조홍식 서울대 로스쿨 교수(한국법학교수회 회장)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나 물었다. 조 교수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게 학교입니까.” 그러면서 한 시간 넘게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학교가 변호사시험(변시) 학원이 됐다. ‘변시 학원’이라는 표현이 문제를 과장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상을 그대로 표현한 적확한 단어”라고 토로했다.

Q : 과거보다 법학 교육이 취약해졌나.
A :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전국 로스쿨 교수들을 만나보면 적나라한 사례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학기 초에 학생 한 명이 찾아와 ‘제가 5명을 데리고 올 테니 강의를 개설해달라’고 요구를 한다. 대신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수업을 초반 4주만 하고, 나머지 기간은 변시 준비를 위해 자습을 하게 해달라’는 조건이다. 이게 학교라고 할 수 있나.”

Q : 과거 법학부 시절에도 사법시험 우선 아니었나.
A : “사시 때보다 교육 상황은 훨씬 나빠졌다. 서울대 로스쿨 졸업학점이 90학점이다. 학생들은 15년간 누적된 족보에 따라 변시 합격에 유리한 헌·민·형(헌법·민법·형법) 위주로 84~87학점을 듣는다. 선택과목은 나머지 3~6학점 가운데 택한다. 학생들은 선택과목을 ‘2주 공부하면 시험 볼 수 있는 과목’으로 정의하고 있다.”

Q : 변시 준비를 나쁘게만 볼 수 있나.
A : “1만 2000건에 달하는 민·형사 판례만 달달 외워서 ‘저사양 법률 로봇’을 양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세법 같은 경우 과거 100명 이상 듣던 과목인데 이제는 달랑 2명이 듣는다. 글로벌 시대 첨단 법률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경제법·환경·노동·지적재산 과목도 모두 2~3명만 앉혀놓고 가르친다. 서울대 대학원 폐강 기준을 5명에서 2명 이하로 낮춘 것도 로스쿨 때문이다.”

Q : 법조인 경쟁력이 약화될 거란 의미인가.
A : “복잡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 법조인 양성은 공염불이 됐다. 해외 시장 개척을 얘기했지만 여전히 내수 중심이다. 한국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 사례를 봐도 1~10위 로펌 중 상위 9위까지 해외 로펌이 차지하는 형국이다. 변호사 수는 늘었지만, 국민 전반의 법률 서비스 접근성을 높였는지도 의문이다.”


“변시 합격률 50% 로스쿨 취지 왜곡…75%로 높여야”


김주원 기자
법학 교육이 위기에 처한 배경에 대해 조 교수는 “인위적으로 50% 선에 고착된 낮은 변시 합격률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2년 1회 시험에서 87.1%를 기록한 변시 합격률은 꾸준히 낮아져 2017년 이후 5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변시는 3290명이 응시해 1745명(53.0%)이 합격했다. 그는 “법학 교육을 정상화하려면 변시 합격률을 단계적으로 7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정 이상의 교육을 이수하면 변호사 자격을 갖춘 걸로 보고 자격시험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Q : 낮은 변시 합격률이 교육 붕괴의 원인이라고 보는 이유는.
A : “교수가 얘기를 해도 학생들이 들을 여유가 없다. 졸업생이 합격을 못하면 낙인이 찍힌다고 느끼니 로스쿨 내부에서 느끼는 압박감은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 5년간 5번 떨어져 변시에 더 응시할 수 없는 ‘오탈자’ 케이스는 말할 것도 없다. 매몰 비용이 너무 커 나락으로 떨어진다. 학생들은 변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변시 합격률만 높여준다면 학생수 티오(정원)를 반납할 용의가 있다는 로스쿨 원장도 있었다.”

Q : 70% 이상 합격률이 적정선이라는 근거는.
A : “미국 뉴욕주 변시 합격률이 70% 선이다. 그보다 낮은 주도 높은 주도 있지만, 점진적으로 5%씩 올려 합격률 75% 선에서 자격시험화 하자는 것이다. 시험을 통한 법조인 선발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 로스쿨 제도를 만든 취지 아닌가. 다양한 소양을 가진 법률가를 키우자고 로스쿨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교육이 망가지고 있다.”

Q : 쉬운 시험이 전문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A : “의사국가고시는 이미 자격시험화 돼있다. 합격률이 90%가 넘는다. 변호사도 타인의 재산·자유를 다루지만, 국민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중요한 일은 의사들이 한다. 현 변시 제도는 기성 변호사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설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스쿨 선택과목, 시험 대신 이수제로 바꾸자”


조홍식 한국법학교수회장이 2일 서울대 법학도서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조 교수는 이른바 ‘선택과목 이수제’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세법·국제거래법·국제법·환경법 등 선택과목을 변시에서 아예 없애는 대신, 해당 과목을 3개 이상 수강하면 시험을 면제해주자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수제로 하는 게 훨씬 교육적 효과도 높고, 해당 분야의 조예도 생길 것”이라며 “이수제 커리큘럼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Q : 선택과목 이수제의 구체적 방법은.
A : “기초법학 6학점, 전문법학 9학점을 이수제에 포함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기초법학도 로스쿨에서 배워야 하는 분야다. 고위 법관들로부터 가끔 법철학 교과서를 추천해달라는 연락을 받는데, 기계적으로 있는 판례만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교육은 그런 고민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나 개탄스럽다.”
조 교수는 숭실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 28회에 합격해 부산지법 판사로 근무했다. 이후 1995년 UC 버클리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7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교에 몸담은 세월이 오랜 만큼,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시민을 위한 법 교육’도 강조했다. “법 전문가는 늘어났을지 몰라도 법적인 사고양식을 공유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종합대학의 법학과 붕괴, 법학 박사 숫자 감소 등 법학 토대가 무너지는 상황이 걱정스럽다. 시민을 위한 법 교육을 강화할 방안을 모색할 때다.”

한영익·최서인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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