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평화의 댐 새옹지마
지난달 중순 강원도 화천 평화의 댐을 찾았다. 최대 저수량 26억t으로 소양강댐(29억t)과 충주댐(27.5억t)에 이어 최대 저수량 기준으로 우리나라 3위다. 하지만 댐에 물은 거의 차 있지 않았다. 발전시설도, 저수시설도 없는 댐이라서다.
‘평화의 댐’ 하면 전두환 정권의 ‘대국민 사기극’을 먼저 떠올리는 이가 많다. 1986년 전두환 정부는 북한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려고 금강산댐(지금은 임남댐)을 건설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드는 200억t의 수공(水攻)을 준비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TV는 여의도 63빌딩이 절반 가까이 잠기는 화면을 보여줬다. 북의 수공을 막기 위해 대응 댐 건설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 주장이었고 대대적인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이듬해 착공해 1989년 1단계 댐이 완공됐다. 국민 성금 639억원을 비롯해 170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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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공에서 시작해 진보정부가 완성
주민 설득 못 하면 신규 댐 불가능
전력망법처럼 총리가 직접 나서야
」
그 후 ‘평화의 댐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감사원 감사 결과, 5공이 북한의 수공 위협을 과장했음을 밝혀냈다. 씁쓸한 기억만 남기고 잊혔던 평화의 댐이 부활했다. 평화의 댐은 1996년 홍수와 99년 태풍 올가 때 북한강 하류의 화천댐 범람 위기를 막을 정도로 홍수 조절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2년 북한이 금강산댐 보수를 위해 저수 중인 물을 무단 방류해 물폭탄이 쏟아졌는데 이것도 잘 방어했다. 그해 김대중 정부는 평화의 댐을 80m에서 125m로 높이고 보강하는 2단계 공사를 결정했고, 2005년 완공됐다. 극한 홍수 때 월류(越流)를 대비해 댐의 정상부 등을 콘크리트로 덮는 3단계 공사(2012~2017년)도 있었지만 댐의 지금 높이와 저수량은 2005년에 완성됐다. 독재 정권 안보를 위해 시작한 댐 건설을 진보 정부가 마무리한 거다. 평화의 댐 전망대 안내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5공화국에서 착공된 평화의 댐이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서 준공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지만, 평화의 댐은 임남댐 붕괴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요즘 평화의 댐이 다시 주목받은 건 환경부의 기후변화댐 발표 때문이다. 14개 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양구군 수입천댐(1억t)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사회가 댐 신규 건설 대신에 평화의 댐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환경부도 일찌감치 이를 검토했지만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평화의 댐은 북한강 최북단 민간인 출입통제선 근처에 있다. 물을 채울 경우 북한 쪽 수몰 지역이 많아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양구군 현지 반응을 취재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이 생각보다 깊다는 걸 느꼈다. 정부가 유명한 생태관광지인 두타연 수몰을 피하는 대안을 마련했지만 신뢰하지 않았다. 정부가 실제 자연환경과 똑같이 디지털로 구현해 댐 건설 영향을 따지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했는데도 현지에선 정부 데이터를 믿지 않았다. 정부가 지역경제를 살리는 예산 지원을 얘기해도 오불관언이다. 과거 소양강댐의 추억 탓이다. 강원연구원은 소양강댐 건설로 인한 피해가 지난 50년간 6조8300억~10조15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와 극한 가뭄에 대비하고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 지원을 위해 기후대응댐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분석에는 공감한다. 물은 부족하고 더 큰 물그릇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역 주민의 동의 없이 댐 건설을 추진하기는 어려워진 시대다. 댐뿐 아니라 하남시 사례가 보여주듯 송·배전망 건설도 주민과 지자체 설득이 관건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전력망법이 총리를 비롯한 중앙정부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긴 것처럼 댐 건설도 환경부를 넘어 총리가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중앙정부가 총력전으로 지역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과연 정부는 그만큼 절실한가. 끝까지 큰 소리로 문을 두드리면 반드시 누군가를 깨우게 될 것이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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