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사라진 비핵화 복원, 이젠 정부의 몫이다
누가 당선돼도 다음 행정부는 북핵 인정한 채 관리 나설 것
김정은 핵 사용 엄포 놓는데 다양한 대비책 미리 준비해야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 미국의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미 대선 결과가 전 세계, 특히 한반도에 미치는 파장은 막대하다. 경제·통상은 물론 외교안보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미 대선 동향에 관심을 쏟으면서 여러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난 몇 주간 미 공화당과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거치며 대선 후보를 확정했다. 전당대회를 통해 바라본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의 외교안보 인식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그 단적인 예는 두 사람의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해리스는 “김정은 같은 폭군이나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트럼프는 “김정은과 잘 지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해리스의 대선 공약집인 민주당 정강정책을 살펴보면, 민주당은 해리스 행정부가 동맹들에 결코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또 북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위해 한국·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동맹국 보호에 충분한 핵 역량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해리스 행정부는 중국 견제 및 동맹 중시 기조를 토대로 한·미동맹 수준과 범위를 더욱 확장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북·미 관계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전략적 인내’를 계속 이어가면서 양측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의 공화당 정강정책은 ‘힘을 통한 평화’로 대변된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같은 불량정권, 테러단체들을 대담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 우선 대외정책’을 통해 미국 위상과 리더십을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집권한다면 한·미 관계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방위비 분담금 등에도 경제 논리를 들이미는 상황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공화당 두 당의 대북 분야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북한 비핵화’의 실종이다. 민주당은 2020년 정강에 있던 “북한 비핵화라는 장기적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한 지속적·협력적인 외교 캠페인” 표현을 이번에 삭제했다. 공화당 역시 4년 전 대북정책 목표로 포함시켰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표현을 없앴다.
한·미 양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여전히 확고하며, 앞으로도 비핵화 노력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단기적 관점에서 북한 비핵화가 조속하게 해결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는 없다”고 언급한 미 정부 인사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제자리걸음인 북핵 협상, 북한 문제가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을 통한 조속한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려된 듯하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대선에서 누가 승자가 되든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당장 북한 비핵화를 추진하기보다는 북한의 핵 능력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쪽에 무게를 둘 것으로 전망한다.
문제는 이런 기조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북한과 국제사회에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향후 북한과의 대화, 비핵화 협상이 다시 시작될 때 비핵화 대신 핵 군축을 협상의 시작점으로 삼자고 할 빌미를 북측에 줄 수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도 없다. 민주당 정부는 재집권하면 한·미·일 3국 공조를 통한 대북 억지력 강화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워싱턴선언에 따른 핵협의그룹(NCG) 운용, 한·미 연합훈련 확대, 전략자산 전개를 실질적인 억지력으로 보기엔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 남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김정은은 남측을 ‘적대적인 두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핵무력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우선 한·미 양국의 북한 비핵화 목표가 흔들리거나 중단되지 않도록 미국의 두 후보 측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여러 시나리오에 대응하는 대비책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지난 30년간의 비핵화 협상이 북측의 일방적인 합의 파기로 실패했다고 해서 북핵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안 된다. 한반도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우리의 미래세대이기 때문이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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