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실시공 카르텔’ 깨려면 감리·감독 분리부터

2024. 9. 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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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용 건축사·서울건축포럼 의장

철근을 누락한 부실시공 ‘순살 아파트’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 감리업체 선정 관련 뇌물 수수 사건이 터졌다. 공무원은 물론 국·공립대와 사립대 교수들이 구속기소 됐고, 공공 발주 공사의 감리 입찰 담합과 뇌물 수수로 법인 17개와 개인 19명이 기소됐다. ‘뇌물 카르텔’이 충격적이다.

광주광역시 아파트 건설 현장의 붕괴 사고와 인천 아파트 철근 누락 사건을 비롯해 건설과 건축을 둘러싸고 부실시공 관련 사건·사고가 끊임없다. 이런 상황에서 감리 부문의 뇌물과 입찰 담합은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다. 부실 감리는 부실 시공으로 이어지고, 결국 국민 안전에 치명적일 수 있다.

「 교수·공무원의 담합·뇌물 충격적
건축사에 감리·감독 다 맡겨 부실
선진국처럼 분리해 안전 챙겨야

일러스트=김지윤

문제는 이번 사건이 한두 명의 일탈 때문만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개입됐다는 점이다. 이런 일이 수십 년간 벌어졌다면 개인의 잘못을 넘어 산업 구조의 문제로 봐야 한다. 특히 건설사의 책임 범위 축소와 감리 업무의 모호함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은 건설 시스템이 한국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가장 큰 차이는 감리에 대한 해석이다. 대다수 국가는 건설업체가 기술적 책임을 담당하면서 전기·소방·구조점검 등 안전과 관련된 부문은 조사와 감독관의 승인 절차로 진행된다. 건축사들의 감리는 대체로 건축법 적용과 설계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분리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조사관이 공정마다 확인하고 승인해야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예를 들어 전기나 소방 조사관이 공사 현장을 방문해 확인하고 승인해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현장을 방문하는 조사관은 이 분야 전문가들이고,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 객관적이면서 공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도 별도의 감독관이 철근 배근 등을 일일이 검수·승인하는 과정을 거쳐 안전을 확인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독립된 감독 기능이 애매하게 뭉뚱그려져 있다. 감리자의 업무에 조사 및 감독 기능을 포함한 것이 문제다. 과거에 왜 우리는 감독 기능과 감리를 하나로 합쳐 뭉뚱그렸을까. 당시엔 개발도상국 시절이라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공사 비용을 절감하려는 필요가 앞섰다.

어차피 건축법과 현장 관리를 설계한 건축사가 현장 공사에 대해 감리를 맡다 보니 감독 기능까지 하라고 맡긴 것이다. 한명이 북 치고 장구 치니 그만큼 부실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고가 잇따라도 감리와 감독 기능을 분리하자는 제도 개선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책임이 모호한 이런 제도를 방치하면 앞으로도 부실 시공이나 부정부패, 뇌물 카르텔을 근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처벌과 벌칙은 이미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게 돼 있지만, 수십 년 낡은 관행과 문제가 되풀이된다면 전체 구조를 대수술해야 하지 않겠나.

건설업계의 건전한 생태계는 얼마나 내실을 충실히 갖췄느냐가 척도다. 과거와 달리 이제 대한민국 건설·건축 업계는 오랜 경험과 학습을 통해 많은 전문가를 배출했다. 건축 전반을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판단이 가능한 전문가인 건축사 인력도 충분하다.

국토교통부는 건축사를 매년 1000명가량 배출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를 전문 감독관으로 지명해 활용한다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시공기술사나 전문기술사 인력도 풍부하다. 따라서 현행 감리 개념에서 감독 기능을 분리해 선진국처럼 각종 안전과 품질을 담당하고 감독하게 해야 한다.

다만 건축사 자격증의 불법 면허 대여 행위가 여전한 것은 큰 문제다. 특히 일반인들이 구분 못 하는 ‘건축가’처럼 건축사 유사호칭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주무 관리 부처인 국토부는 수수방관하지 말고 근절시켜야 한다.

감독과 감리를 엄격히 분리하려면 법적 자격을 갖춘 건축사를 존중하고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인된 건축사 자격이 없는 업자가 ‘건축가’라는 호칭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법적으로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 공인된 건축사가 아닌 가짜들이 행세하고, 이들의 로비와 부정한 청탁이 난무하도록 방치하면 부실 감독, 부실 감리, 부실 시공이라는 ‘시한폭탄’은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성용 건축사·서울건축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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