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한국화 물감에 빠진 프랑스 아티스트, 파비앙 베르쉐르
프랑스 미술가 파비앙 베르쉐르(Fabien Verschaere·49)가 지난달 28일부터 서울 웅갤러리, 본화랑, 갤러리 비앤에스, 부암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습니다. 자하문 터널 인근에 모여 있는 네 갤러리가 동시에 베르쉐르 작품을 걸었는데요, 전시 제목이 ‘눈치(NUNCHI)’입니다.
작가는 한국인과 소통하며 프랑스어로 번역할 수 없는 ‘눈치’라는 단어를 듣고 굉장히 흥미로워했다고 합니다. 사실 작품들은 이 제목과 특별한 관계는 없습니다. 제목은 작가가 한국 문화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친근감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에 가깝습니다. 베르쉐르는 한국을 좀 아는 작가에 속합니다. 2015년 국내외 작가들이 지드래곤과 함께 준비한 ‘피스마이너스원’에 참여했고, 2018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 왔었습니다. 2019년엔 일민미술관 기획전 ‘불멸사랑’에 참여했고요.
베르쉐르는 만화 캐릭터, TV 속 인물 등 대중문화와 상상 속 생명체 등을 그리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화면에 구불구불 검은 선으로 그려진 캐릭터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식물과 동물 사이, 인간과 로봇 사이에 있는 하이브리드 생명체입니다.
베르쉐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안 좋아 15년 가까이 병원과 집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후엔 일반 고등학교를 나왔고, 파리 국립 예술 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학사), 낭트 국립 예술 학교(석사)를 졸업했습니다. 지난 파리 올림픽 땐 선수촌 숙소에 벽화를 그렸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약 90여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작품 수가 많다 보니 작품의 변화도 보입니다. 특히 신작들은 화면의 맑고 밝은 부드러운 느낌이 한결 더해진 게 두드러집니다. 전에 없던 여백까지 생겼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비밀은 한국화 물감에 있었습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베르쉐르는 “2015년 한국화 물감을 처음 접했다”며 “발색이 수채화 물감과 다르고 내 작품에 맞는 것 같아 즐겨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국화 물감으로 작업하면서 여기에 가장 잘 맞는 스페인산 캔버스도 찾아냈다”고 덧붙였습니다. 흰색 배경을 만나면서 그의 캐릭터는 더 생기발랄하고, 친근하게 변했습니다. 한국화 재료가 프랑스 예술가의 감성과 만나니 또 이렇게 새롭습니다. 한국화 작가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는 4일 국제 아트페어 프리즈서울과키아프가 개막하면서 서울은 이번 주 큰 미술 축제에 돌입합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행사가 전부는 아닙니다. 서울 부암동과 평창동, 삼청동과 한남동, 그리고 강남의 갤러리에서 다양한 전시가 9월 말까지 열립니다. 날씨도 선선해졌습니다. 이제 필요한 건 ‘한 번쯤 나들이할 결심’입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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