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내 몸이 아닌 모욕
하나의 기사를 보고도 매일 또 새로운 기사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딥페이크를 이용하여 지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성범죄의 현장이 보도되기 무섭게 딸을 포함한 주변 여성들의 사진을 몰래 찍어 공유한다는 커뮤니티 사이트가 보도된다. ‘합성방’의 숫자는 보도될 때마다 늘어나고 사용자 수 역시 중복되는 수를 감안해도 터무니 없이 많다.
이러한 성범죄에는 으레 다음과 같은 모욕적인 말이 따라붙는다. ‘너는 합성될, 찍힐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화가 나고 두려워? 합성된 몸은 어쨌든 네가 아닌데 뭐가 그렇게 불쾌해?’ 불쾌감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질문들이다. 왜 불안해하는가. 첫째, 합성될 일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고, 둘째, 내가 합성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주변의 여성이 합성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는 합성하는 범인들이 그의 주변 여성들을 성적으로 물화하는 일을 통해 쾌감을 느끼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기 몸도 아닌 것에 왜 그리 불쾌감을 느끼는가. 아는 이의 얼굴을 모르는 나체에 합성하는 일은 그의 인격을 성적인 물건으로 환원하겠다는, 겨우 하나의 성적인 육체 덩어리로 전락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정희진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2023)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몸은 타고나는 생물학적 신체가 아니라, 물이 끓듯 매 순간 의미를 생성하고 의미가 휘발하는 투쟁의 장소이며 외부와 구별될 수 없는 존재이다. 사회가 개인에게 ‘각인’하는 어떤 권력, 이에 대한 개인의 수용, 저항, 협상, 반응 사이에 여성이 존재한다.” 이제는 자신이 가지지 않은 가상의 몸조차 투쟁의 장소가 되었다. 타인을 물화시키기 위해 현실의 몸을 넘어 가상의 몸까지 악착같이 이용하는 악의에 맞서 이 사회는 결단력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인공지능의 시대 앞에서, 우리는 중대한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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