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4년 전 대답은 축구팀, 지금은 바흐죠”
입사 27년 차인 이재후(54) KBS 아나운서는 스포츠 중계로 이름을 알렸다. 1999년 축구 중계를 시작했고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부터는 폐회식을 맡으면서 개·폐막식 중계의 아이콘이 됐다. 특히 평창 동계 올림픽과 도쿄 올림픽 폐막식에서 “비장애인 올림픽을 마칩니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화제가 됐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개·폐막식을 비롯해 5개 종목 중계를 담당한 캐스터였다.
파리에서 양궁, 역도, 근대5종, 아티스틱 스위밍, 마라톤 수영을 중계했던 그가 서울에 돌아와 맡은 일은 클래식 음악 방송이다. 이재후 아나운서는 2020년부터 KBS 1FM(클래식 FM, 93.1MHz)의 ‘출발 FM과 함께’를 진행하고 있다. 오전 7~9시 프로그램이다. 그가 진행한 올림픽 개·폐막식이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클래식 음악 방송도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KBS 1FM에 따르면 ‘출발’은 1FM의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청취율(7월 9~22일 기준)을 기록했다. 클래식 퀴즈를 출제하면 청취자 2000여명이 응모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만난 이재후 아나운서는 “처음에는 떠맡듯이 진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클래식은 전혀 듣지도 않았고, 작품 이름들이 쓰여있는 큐시트는 암호 같았다.” 4년 전 클래식이 얼마나 생소했는지에 대해 그는 또 이런 비유를 들었다. “라이프치히 하면 축구팀만 떠올랐다.” 지금은 무엇이 떠오를까. “당연히 (라이프치히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냈던) 바흐다.” 지금 그는 대본에 없는 클래식 음악 관련 내용도 즉흥으로 전할 정도의 진행자가 됐다.
여기에는 성실한 노력이 있었다. “일단 작곡가, 곡명, 형식을 다 써놓고 공부를 했다.” 작곡가와 연주자 등을 공부한 데이터베이스에는 1만2000여 명의 이름이 들어있다고 했다. 클래식을 전혀 모르던 ‘클알못’의 성장 배경에는 공부의 힘이 컸다. 무엇보다 많이 들었다. “악기별, 작곡가별, 시대별로 들어봤다. 그러다 보니까 음악사도 알아야겠더라.” 그때부터 책을 읽었다.
음악에 접근한 방식은 스포츠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역도를 중계할 때면 역도 지도자 교본을 찾아보고 종이 한 장에 내용을 정리한다. 그걸 해설위원과 공유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찾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정보를 찾아 나름대로 요약정리 해놓는 것이 그의 습관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한 4년을 “풍요로워졌던 시기”라고 요약했다. “결국에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곡가가 왜 그랬을까 그의 마음을 떠올린다. 늘 승패가 결정되는 스포츠의 세계와 달리 긴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돌보는 점이 좋다.”
언젠가 올 마지막 방송에 대한 그의 계획은 구체적이다. “담백하게 녹음 방송으로 마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었다. “내가 클래식 진행을 할 만한 사람인지 의문이 있고 마지막까지 그럴 것 같기 때문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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