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과 리디아고의 명예의 전당 [김선걸 칼럼]
“며느리인 리디아 고가 ‘(LPGA)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길 온 가족이 간절히 바라는데 1점이 모자라서 못 들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먼저 들어와버려 미안하네요.”
한 달 전 ‘100대 CEO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였다. 수상자 중 한 명인 정태영 현대카드·커머셜 부회장의 수상 소감에 참가자들의 웃음이 터졌다.
매경이코노미는 지난 2005년부터 20년간 매년 100명의 CEO를 선정했다. 이 상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024년까지 20차례 연속으로 받은 세 명의 경영자가 올해 나왔다. 정태영 부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다.
지난 20년간 한국 경제는 불확실성 그 자체였다. 흔들리지 않은 기업은 흔치 않았다. 100대 CEO 명단을 보면 11년 전(2013년)만 해도 강덕수 STX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지금은 사라진 경영자들이 연속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기라성 같은 기업인들이 세무조사나 수사로 수감되기도 했다. 실적 충격에 후선으로 물러나거나 작고한 경영자도 있었다. 여러 이유로 100대 CEO에서 낙오했다. 연속 수상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갈 확률이었다. 현대카드, 아모레퍼시픽, 한국투자금융만이 위기를 버텨냈다.
정 부회장의 정성이 통한 것일까. 수상 소감을 내놓은 7월 25일로부터 정확하게 한 달 뒤인 8월 25일, 며느리인 리디아 고는 ‘AIG 위민스 오픈’에서 우승해 ‘메이저 퀸’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2주 전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LPGA 명예의 전당 입성은 확정됐지만 메이저 우승은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리디아 고에게 메이저 우승의 의미는 크다. 열다섯 살 때 LPGA 우승을 시작하며 타이거 우즈를 넘는 골프 천재로 지목받았지만, 2018년 이후 우승이 줄며 은퇴마저 거론됐기 때문이다.
슬럼프 중이던 4년 전쯤 리디아 고는 열다섯 살 때의 자기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LPGA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다.
‘안녕, 열다섯 살 리디아야. 멋진 일들과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길 거야’로 시작하는 글이다.
“네 스윙이 왔다 갔다 할지 모르겠지만,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아끼는 사람들은 흔들림 없이 널 사랑할 거야. 트로피는 네가 과거에 큰 성취를 이뤘다는 증거야. 하지만 너의 가족과 친구들은 네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그리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나타내. 그들의 포옹, 그들의 존재감, 그들의 웃음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이야.”
‘천재 소녀’에게 슬럼프는 어둡고 우울한 시기였을 것이다. 이럴 땐 보통 스스로를 책망한다. 그런데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 돌아가 토닥였다.
“사람들이 듣자마자 너인 것을 알 수 있는 그 웃음은, 절대 변하면 안 돼. 친근하고 호감을 주는 성격을 계속 가져갔으면 좋겠어. 자원봉사자분들을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으면 주저하지 마. 항상 ‘너 자신’이 되도록 해. 그리고 행복해, 그러면 다른 건 다 잘될 거야.” 칼럼을 쓰는 순간,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리디아 고가 ‘커리어 그랜드 슬램(5개 메이저 대회 우승)’을 목표로 다시 신발 끈을 맨다는 것이다.
그렇다. 명예의 전당은 끝이 아니다. 긴 인생의 하나의 점일 뿐이다.
또다시 샷은 흔들리고 경영 위기는 닥쳐올 수 있다.
슬럼프나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10년 전 자기에게 돌아가 토닥이며 ‘지금의 너를 잃지 마’라고 말해주는 건 어떤가.
가장 값진 것은 가족과 친구들, 그들의 웃음이란 것, 그리고 미래가 곧 그들이란 말은 정말 멋진 말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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