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 없는 가정이라서 걱정? 오히려 환영입니다
[이준수 기자]
옛날 학교에서는 집에 컬러텔레비전이 있는지 조사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없는 집을 찾는 편이 더 빠르다. 나는 강원도 영동 지방에서 15년간 초등교사를 하고 있다. 시내 지역부터 벽지 탄광촌, 전교생 스물다섯 명의 어촌 소규모 학교까지 여러 곳을 두루 거쳤다. 학급에 경제적 지원 대상 아동이 거의 없는 학교도 있었고, 교실의 절반이 지원대상자인 학교도 있었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존재했다.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냉장고와 텔레비전, 휴대전화는 갖춰져 있었다. 적어도 내가 첫 발령을 받은 2009년 이후는 그랬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은 최소한의 물질 면에서 부족함이 거의 없다. 컴퓨터가 없는 어려운 가정에 노트북이나 태블릿 PC를 보급하는 교육청 사업도 있고, 복지 혜택의 일환으로 통신비까지 지원되기도 한다. 장비가 없어서 친구 집이나 학교 컴퓨터실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의미다.
문화생활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영화 관람에서부터 놀이공원, 야구장 이용까지 여러 사업 주체가 시행하는 복지 관련 사업이 많다. 내가 교내 복지 업무 담당 교사로 지내는 몇 년간 이곳저곳을 두루 다녔다. 특히나 농어촌 지역 학교는 복지 관련 사업이나 예산이 더 많았다. 덕분에 5, 6학년이 함께 가는 수학여행이나 전교생 서울 뮤지컬 관람이 가능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세상이니 가정과 학교가 더 평화로워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등으로 전문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관심군' 아이들이 해마다 8만 명 규모로 집계된다. 반면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 5명 중 1명은 전문 기관 치료를 받지 않는다. 보호자 동의 없이는 전문가 개입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교실에는 밥을 굶거나 휴대전화가 없는 아이가 극히 드물지만 스스로 행동 제어가 안 되는 아이는 흔하다.
특히나 위기 가정에 속한 아이가 학급에 있으면 공부는 물론 옷차림부터 위생, 게임 의존증까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새벽까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하느라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가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는 친구였는데 외로운 마음이 들 때마다 짧은 동영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무한재생되는 릴스의 공간에서 아이는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SNS를 하면 잠을 설치게 되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간단하게 현실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사이버 세상을 쉽게 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위클래스와 연계하여 전문가 상담을 꾸준히 받고, 보호자 분께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셔서 차츰 나아질 수 있었다.
텔레비전 없는 집의 현재적 의미
하드웨어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최적화된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최신 기기도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교육과 성장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학기 초에 텔레비전이 없는 집을 물어보곤 하는데, 반에 한두 명 정도가 손을 든다. 개발도상국 시대의 한국이었으면 평균보다 물자가 부족한 가정으로 분류되었겠지만 지금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게 된다.
▲ TV에 푹빠져 시청하는 아이의 모습 "학부모님께서 아이를 잘 키우려면 뭘 더 시키면 될까요?라고 물어보시는데 나는 오히려 빼기를 추천드린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 빠져있으니 반대로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치워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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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부모님과 상담할 때면 좋은 가정의 장점을 기록해 두는 습관이 있다. 학생 지도에 도움이 될까 하여 나름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나중에 취합한 메모를 쭉 정리하다 보면 의외로 소박한 모습에 놀랄 때가 잦다.
집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습관. 대체로 집이 단정하고 깨끗했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가정은 쓸고 닦고, 설거지하며 공간을 말끔하게 유지하는 습관이 자리 잡혀 있었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아이는 병치레를 덜 했다. 도서관을 일주일 단위로 방문하며 대출 기간을 지키는 습관 역시 부지런함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독서와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부모님이 함께 실천하기는 어렵다. 도서관은 독서 습관을 기르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다. 아이와 책을 고르고,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식사를 규칙적으로 먹는 일상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밥상머리에서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은 소중한 가정 의식에 가깝다. 제철 음식은 영양소가 풍부하고 맛과 향이 진하다. 가족이 함께 장을 보고 밥을 먹는 일련의 행위는 그 자체로 따뜻한 공동체의 기본 조건이 된다.
문제는 가사에 충실하며 돌봄에 전념하는 생활을 하는 데도 비용이 드는 것이다. 외벌이 가정이 일반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맞벌이 비중이 많이 높아졌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3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가구 중 46.1%가 맞벌이였다. 특히 40대(55.2%)와 50대(55.2%)에서 비율이 높았다.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시기에 맞벌이가 몰려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외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자녀 돌봄과 가사에 집중할 여지가 생긴다. 반면 금전적으로 수입이 줄어든다. 원래부터 넉넉한 집안이라 돈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라면 모를까,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돌봄과 경제 수입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불필요한 것 덜어내고 자극으로부터 멀어져야
부부 교사인 우리 가정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유치원 때보다 하교가 빨라졌다. 유치원에서는 오후 4시 이후 아이를 데려오면 되기에, 복무를 조절하면 맞벌이여도 큰 지장은 없었다. 반면 초등학교 1학년은 1시 20분이면 끝났다. 양가 부모님이 다른 지역에 있고, 직업이 있으셔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학원 뺑뺑이를 돌리자니 불안해서 썩 내키지 않았다.
육아휴직이 가장 좋은 대안이기는 하지만 당장 여기저기 돈 나갈 구멍이 보였다. 십 년을 타다 보니 저단 기어에서 덜덜 거리는 차가 있었고, 휴대폰은 오 년을 채워가고 있었으며, 큰 아이가 입학할 무렵에는 아파트 대출 잔금도 남아 있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우리는 최종적으로 시간을 선택했다. 수입이 줄어든 만큼 외식 대신 집밥 비중을 늘리고, 학원 보낼 돈을 아껴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서 풀었다. 돈은 나중에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지만, 아이들의 유년기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에 의미를 두었다.
▲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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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교육은 평범하다. 단단하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좋은 습관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초등교육의 목표는 명확하다. 기초 지식을 익히고, 올바른 생활 태도와 건전한 가치관을 습득할 수 있도록 아이를 키우면 된다. 최고 사양 스마트 기기는 없어도 되지만, 따뜻한 관계와 배려 그리고 열정은 필수적이다.
▲ 스마트폰 중독을 막기 위해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보관함. 일정 시간 사용을 중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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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전방위로 영향력을 뻗치는 가운데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려 한다. '최첨단' 하드웨어가 성장하는 속도를 '건강한 생활습관과 따뜻한 관계'라는 소프트웨어가 못 따라가고 있으니 그 차이를 메우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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