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위기의 식품사, 사내벤처에서 미래 찾는다
농심, 스마트팜·IP 활용한 꿀꽈배기 맛주까지
저출산으로 국내 시장 성장 한계…새 길 찾아야
저출산 시대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식품사들이 사내벤처를 적극 육성하며 신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그 결과CJ제일제당은 버릴 뻔한 깨진 쌀로 과자를 만들며 수출길을 열었고, 농심은 출시된 지 50년도 넘은 과자에 전통주를 접목하며 젊은 세대 공략에 나섰다. 창립 이후 반세기가 훌쩍 넘은 식품사들은 사내벤처를 통해 혁신 DNA를 깨우며 고갈됐던 미래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2021년부터 식품 사내벤처 프로그램 '이노백(INNO 100)'을 운영 중이다. '혁신에 몰입하는 100일'이라는 뜻으로 이노백에 지원한 직원들은 기존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100일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몰입하게 된다. 현재 4팀이 활동 중이다.
대표적인 팀이 '뉴 스낵 이노베이션 랩(New Snack Innovation Lab)'이다. 이 팀은 최근 고단백 스낵 ‘O-right(오-라잇) 템페칩’을 태국에 출시했다. 콩 발효음식 ‘템페(Tempeh)’를 활용해 만든 스낵으로, 한 봉지 당 6g의 식물성 단백질이 함유됐다. 콩을 갈지 않고 원물 그대로 발효시킨 템페의 고소함이 특징이다.
CJ제일제당은 감자칩 위주의 태국 스낵 시장에서 건강을 고려한 과자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템페칩의 출시를 결정했다. 한국 음식에 관심이 높은 현지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숯불갈비·볶음김치 맛과 태국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리라차·트러플&치즈 총 4가지 맛으로 나왔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사내벤처의 참신한 도전정신으로 현지화 스낵을 개발했다”며, “템페칩을 태국 소비자들의 일상 간식으로 자리매김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뉴 스낵 이노베이션 랩은 앞서 출시한 '익사이클 바삭칩'으로 이미 대박을 경험한 팀이다. 바삭칩은 햇반을 만들 때 나온 깨진 조각쌀과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활용한 푸드 업사이클링 스낵이다. CJ자체몰과 올리브영을 넘어 편의점까지 판로를 넓히더니, 지난해에는 미국·말레이시아·홍콩에도 진출했다. 최근에는 호주 코스트코에서까지 출시됐다. 저부가가치 부산물로 고부가가치 스낵을 만들어 돈을 벌어다주는 것은 물론 부산물 폐기 비용까지 아껴줬으니 CJ제일제당으로서는 사내벤처를 지원한 보람을 맛본 셈이다. 게다가 ESG 점수까지 높여줬으니 일석삼조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MZ세대 직원들의 도전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사내벤처를 통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 내 뉴 스낵 이노베이션 랩 외 또 다른 사내벤처인 '플랜트 베이스드 데어리 랩(Plant-based Dairy Lab)'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이 팀은 2022년 6월 식물성 음료·디저트 브랜드 ‘얼티브’를 출시한 데 이어 최근 얼티브 아이스크림 2종도 선보였다. 기존 식물성 아이스크림의 특유의 서걱거리는 식감을 기술력으로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농심 역시 사내벤처 육성에 적극적이다. 2018년 시작된 농심의 엔스타트는 직원이 내부 역량을 활요해 신사업을 제안하고 리더가 돼 직접 추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디어가 선정된 팀은 회사로부터 사업화 예산, 스타트업 육성 전문가 멘토링 등을 지원받으며 직접 사업을 구체화하게 된다.
지난해 3기까지 총 7개팀이 신사업에 도전했으며 이 중 스마트팜, 건강기능식품, 자사몰 등 3개팀은 사내 정식 부서로 편성돼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스마트팜은 2022년 말 오만을 시작으로 UAE, 사우비아에도 수출을 시작하며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콜라겐 중심의 건강기능식품도 지난 5월까지 누적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며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4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팀은 '전통주 추진팀'이다. 최근 막걸리 양조장 ‘조은술세종’과 협업해 ‘꿀꽈배기맛주’를 개발했다. 현재 편의점 CU를 통해 판매 중이다. 꿀꽈배기는 1972년 9월 출시됐다. 사내벤처를 통해 쉰살이 훌쩍 넘은 과자가 술로 새롭게 거듭난 것이다. 꿀꽈배기맛주는 국산 쌀 소비를 활성화할 뿐 아니라 중소 양조장과 페트병제조업체와의 상생을 강화하는 사회공헌적 의미도 컸다. 전통주 추진팀은 앞으로 꿀꽈배기 외에도 농심 브랜드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다양한 전통주를 선보일 계획이다.
농심은 앞으로도 엔스타트 제도를 통해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농심 관계자는 “회사의 장기 경쟁력은 직원들의 능동성에서 나온다”며 “엔스타트를 통해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산하는 기회를 제공해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제도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롯데웰푸드 역시 2021년부터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선발된 사내벤처팀에는 사업 지원금, 별도 외부 사무공간, 롯데벤처스 1:1 컨설팅, 분사 및 지분 투자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총 4기까지 선발됐다. 1기와 2기는 분사, 3기와 4기는 사업 인큐베이팅 과정에 있다. 다른 식품사와 달리 분사가 가능하다. 롯데웰푸드 관계자는 "식품업계에서 유일하게 사내벤처에 분사라는 선택지를 부여함으로써 주인의식을 배양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복귀의 기회 역시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식품사들이 사내벤처를 적극 육성하는 것은 저출산으로 내수 시장이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과자, 라면 등 가공식품을 사먹을 '입'이 줄자 소비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다행히 K-컬쳐 인기에 따른 전 세계적 K-푸드 관심으로 새로운 동력을 마련했으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한 식품사 관계자는 "저출산으로 인해 저성장의 늪에 빠진 식품사들이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서는 사내벤처는 필수 불가결"이라며 "이를 통한 혁신 DNA를 깨워야 신성장 동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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