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집단소송’...'부실 뇌관’이 된 '생활형 숙박시설'
최근 생활형숙박시설(레지던스·생숙) 시행사를 상대로 한 ‘집단 소송’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생숙을 주거시설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면서 생숙의 상품 가치가 크게 떨어진 영향이다. 준공 후 주거용으로 사용할 경우 수천만원의 이행 강제금을 물게 될 처지에 놓이자 분양 계약자 중 상당수가 사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분양 잔금을 내지 않고 있다.
2일 한국레지던스연합회와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전국에서 생숙 관련 집단소송이 최소 50여건, 관련 소송 인원만 3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 강서구 ‘마곡롯데캐슬 르웨스트’, 중구 ‘세운 푸르지오 G-팰리스’, 경기 안산시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 인테라스’ 등 올해와 내년 입주를 앞둔 단지를 중심으로 집단 소송이 진행 중이다.
레지던스라고도 불리는 생숙은 건축법과 공중위생관리법의 적용을 동시에 받는 변종(變種) 주택이다. 2012년부터 도입 당시 외국인 등 장기투숙 수요에 맞춰 취사 설비를 갖춘 숙박시설로 활용됐다. 하지만 전입신고가 가능하고, 특별한 규제도 없어 사실상 주택으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파트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크게 오른 2020~2021년에는 생숙 청약 광풍이 불었다. 주택 실수요자는 물론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수요까지 청약에 모였다.
투기 조짐이 나타나자 정부는 규제를 강화했다. 지난 2021년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해 생숙의 숙박업 등록을 의무화하고, 주거용으로 사용할 경우 공시가격의 10%에 달하는 이행 강제금을 매년 부과하기로 했다. 생숙 거주자들은 이행강제금을 내고 계속 거주하던지, 퇴거한 후 숙박시설로 영업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정부가 기존 생숙을 주거가 가능한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는 길을 열어주긴 했지만, 생숙 소유주들은 오피스텔로 전환하려면 건축기준을 맞춰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단 정부는 이행강제금 부과를 올해 말까지 유예했다. 하지만 주거용으로 사용이 막히면서 레지던스의 몸값은 크게 떨어졌다. 담보가치 하락에 따라 대출 등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수분양자들의 부담이 커졌다. 이에 계약자들은 소송을 통해 시행사 압박에 나선 것이다.
생숙 분양 계약자들은 “시행사가 주거용으로 활용 가능하다며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는 등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소송을 통해 계약 취소나 분양가 할인, 오피스텔로 용도변경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행사들은 “계약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행사 H건설도 계약자와 소송 중인데, 이 회사 관계자는 “계약 당시 주거용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확인서를 받아놓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특정 법무법인이 승소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소송인을 모집해 수임료 장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규제가 유지되는 한 양측의 대립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생숙을 둘러싼 소송전이 확산할 경우 건설업계에 후폭풍이 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시행사는 잔금 등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자금난을 겪게 된다. 시공사는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데다,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부담도 지게 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생숙 사업장에 수천억원의 PF(프로젝트 파이낸스) 담보를 제공했는데 공사비 회수가 어려워지고 준공 지연 등 사업이 지체되면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최근 생숙으로 분양한 강서구 ‘마곡롯데캐슬 르웨스트’를 주거 가능한 오피스텔로 용도 전환을 허가하면서 시행·시공사는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정부는 생숙 관련 규제 완화 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건설·시행업계 등에서 요구하는 대로 생숙에서 주거를 허용하거나 이행강제금 부과를 철회하는 식의 접근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도 “여러 가지 실효적인 해법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있어 특정한 날짜를 정해 대책을 발표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시행사 대표는 “준공을 앞둔 물량까지 포함하면 주거시설로 활용 가능한 생숙이 전국에 13만 가구가량”이라며 “주택이 부족해 정부가 그린벨트까지 푼다고 하는데, 생숙의 70%가량만 주거시설로 활용하면 주택공급 부족문제도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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