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질'이라더니…김정은 "병원은 무조건 연내 완공" 재촉 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역점 사업인 '지방발전 20×10 정책' 지방공업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속도보다는 질'을 강조했다. 또 같은 날 지방발전사업협의회를 소집해 전국 시·군에 병원을 짓는 것은 "숙원사업"이라며 "무조건 당해년도에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이 이런 모순된 지시를 내린 건 지난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목표 시한이 내년 말로 다가오면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초조함을 드러내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일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달 31일 함경남도 함주군 지방공업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건설에서 기본은 질이며 속도 일면에 치우쳐 질을 경시하는 요소는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우리 당의 지방건설정책에 저해를 주는 해독행위"라며 간부들을 향해 "뜬 구호나 외치는 유람식, 멋따기식 지도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런 현장에서의 언급과 달리 같은 날 소집한 지방발전사업협의회에선 속도전을 주문했다. 지난달 24~25일 자신이 지방공업공장 건설장 현지지도에서 추가로 제시한 '3대 건설 과제'(보건시설, 과학기술보급거점, 양곡관리시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다.
김정은은 "특히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방의 보건실태를 개선하고 지방인민들의 생명안전과 건강증진에 크게 이바지할 시, 군 병원 건설은 제일가는 숙원사업"이라며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현대적인 보건시설 건설을 '지방발전 20×10정책'에 추가하며 무조건 당해년도에 완공하여 각 지방 인민들에게 안겨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그동안 지난 7월 말 평안북도와 자강도를 비롯한 북부 국경 지역의 수해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부인해왔다. 그러나 김정은이 지방 병원을 비롯한 보건시설 확충을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추가 과제로 제시한 것은 민심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수해로 산업적 타격과 함께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방발전 관련 건설계획을 '위민' 차원에서 확대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9~12월 사이 최고인민회의 및 노동당 전원회의 개최를 앞두고 성과를 최대화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실제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8·15 통일 독트린'에 보름째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한·미가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진행한 하반기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에도 강도 높은 도발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민생과 경제를 챙기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골몰하는 분위기다.
다만 김정은의 의지와 별개로 국제사회의 전방위 대북 제재로 의료기기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병원을 꾸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정은이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에 맞춰 마무리하려던 평양종합병원도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조급증을 보이는 양상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국제사회의 전방위 제재와 코로나19 봉쇄로 4년 차에 들어선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로 숨통을 틔웠지만, 만성적인 내부 자원 고갈을 단기간에 극복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과기대 외국인 교수진에 입국 비자 발급"
한편 북한 당국이 최근 평양과학기술대(PUST) 초빙 외국인 교수진에 입국 비자를 발급하고 있는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북한 당국이 국경을 폐쇄한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비롯한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말 평양과기대 교수진 일부에 대해 입국을 허가했다. 이는 최근 싱가포르·태국 등 재외공관장을 연이어 임명하고 있는 북한이 서방 국가 외국인에게도 제한적으로 국경을 개방한다는 의미가 된다. 교수진은 미국·유럽 등 국적의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2010년 개교한 평양과기대는 이공계 특화 사립대학으로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 앞서 2020년 코로나19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평양과기대 교수들도 북한을 떠났다.
한편, 미국 북한 전문매체인 NK뉴스는 이날 상업용 위성기업 '플래닛랩스'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평양 만수대의사당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해 북한이 오는 9일 정권수립기념일을 맞아 대규모 야외공연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을 내놨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주 각국 재외공관에서 준비하던 정권수립기념일 리셉션을 갑자기 취소한 것과 배치되는 것으로 수재민을 포함한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권수립기념일 행사를 계기로 민심 이반을 차단하고 올해 계획된 각 분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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