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방, 명문대 출신 과외교사가 본 끔찍한 광경
[김상목 기자]
공포영화는 무더운 여름 장사로 치부되곤 한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적정 흥행을 담보하는 유형으로 규정되고, 저예산 덕분에 신인 감독이나 배우들 등용문 노릇도 한다. 상대적으로 완성도나 규모 면에서 급이 낮지만, 다양한 시도나 모험이 가능한 셈이다. 그래서 독립예술영화와 거리가 멀어 보이면서도 접점이 생긴다.
국내에선 유독 '장르 영화' 호칭이 붙는 순간, 사회적 고민과 거리가 멀어도 된다는 편견이 존재하지만, 실은 공포영화만큼 그런 측면을 다채롭게 구현하기 좋은 장르도 드물다. 이를 간파한 도전은 종종 흥미로운 파생 효과를 창출하곤 한다. 공포 옴니버스 <기기묘묘2> 역시 그런 예시에 속한다.
▲ "기기묘묘2"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 필름다빈 |
항공사 승무원은 늦은 밤 남자기사가 모는 택시를 타고 출근한다. 하지만 예정시간 한참 지나도 인적 드문 시골 도로에 머물 뿐이다. 거듭 기사에게 길이 맞냐고 묻지만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 승무원은 두려움과 초조함에 휩싸인다. 게다가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정체불명의 존재가 택시와 충돌한다. 경로를 이탈한 택시는 막다른 곳에 멈춘다. 낯선 존재가 주위에 있다는 사실은 택시 안과 밖 두 겹의 공포로 조여온다.
<탄생>
'미숙'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딸은 교수지만, 엄마를 집으로 다시 모실 생각은 없다. 혼자 몸으로 뒷바라지해놨더니 말이다.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고 말겠다는 생각뿐인 그는 병실에서 정체불명의 환자와 만난다. 집에 보내줄까? 묻고 대가로 젊은 여자 머리카락을 가져오라 한다. 과연 소원은 이뤄질까?
<과외 선생님>
명문대 영어영문학과 출신 여성이 과외교사를 준비한다. 의뢰인 사정이 특이하지만, 고민 없이 승낙한다. 딸은 공부를 못하지 않는데 유독 영어는 배우려 않는다는 것이다. 과외교사 여럿 붙여봤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선생님이 마지막 희망이라 한다. 하지만 아이는 불을 끈 방에서 책상에 엎드려 울기만 한다. 수업을 개시하자 기이한 행동이 시작되고 비현실적 장면이 펼쳐진다. 화들짝 놀라 맨발로 집에 돌아오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방인>
물류단지에는 수천 개의 컨테이너가 요새처럼 안과 밖을 나눈다. 이주노동자들만 가득한 단지에 '토종' 한국인은 관리자 몇 명에 불과하다. 이주노동자가 컨테이너에 팔이 깔려 불구가 되지만, 회사는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흉흉한 소문이 돈다. 관리자들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이다. 새로 발령된 '우진'은 꺼림칙할 수밖에 없다. 창고에 있을 리 없는 어린 외국인 여자아이가 자꾸만 출몰한다. 단지 곳곳을 수색하자 괴이한 흔적이 발견된다.
<기억의 집>
엄마가 죽었다. 딸은 유품을 정리한다. 오랜 간병에 지친 딸은 응급 벨을 제때 확인하지 못해 때를 놓쳤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은 막을 수 없던 걸까. 차라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길 바란 건 아닐까? 회상 속 병마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딸이 죽이려 한다며 짜증을 부린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벨을 눌러대지만, 딸은 문을 닫고 기다리다 적막이 감돈다. 현재로 돌아온 딸에겐 불쾌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벨이 울리고 조명은 깜빡거린다. 집 안에 누군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 "기기묘묘2 - 블랙박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필름다빈 |
(1) 폐쇄공간에서 타인에 대한 불신 (2) 타인=중년 남성 vs 나=젊은 여성 (3) 특정 직업군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스테레오 타입 형상화까지 사회적 갈등을 활용하는 형태로 긴장은 이어진다. 정체불명 위협은 도시 괴담의 방법론을 따른다. 어두운 밤, 인적 끊긴 외곽 국도는 우리가 알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외계다. 도시의 불빛에 길든 우리는 태고의 어둠과 인공이 뒤섞인 잡종 암흑에 존 카펜터의 <매드니스>나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처럼 거부감을 느낀다.
<탄생>은 세대 갈등과- 계급 갈등 - 여성 간 갈등이 복합적으로 엉킨다. 늙고 병든 '미숙'은 자녀 양육에 모든 걸 희생하고 외형상 보답 받았다. 번듯한 집과 교수 자녀다. 하지만 자식은 그를 불편해 하고, 재산은 아무 힘이 되지 못한다. '미숙'은 분노한다. 정체불명 존재는 집으로 돌아갈 방도, 다시 젊어질 수 방책을 제안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리를 빤히 들여다보는 유혹이다. '미숙'은 젊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집요하게 노린다.
▲ "기기묘묘2 - 과외 선생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필름다빈 |
▲ "기기묘묘2 - 이방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필름다빈 |
▲ "기기묘묘2 - 기억의 집"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 필름다빈 |
딸은 경제적, 육체적으로 지친 지 오래다. 풍족하지 못한 형편 탓에 딸의 일상은 오직 어머니 간호에 바쳐진 상태지만 차도는 없다. 그 지경이라면 과연 그의 삶이 어머니와 다를 게 무엇일까. 끔찍하고 슬픈 일이다. 우리는 찍고 자르고 썰어대는 슬래셔 영화엔 환호성을 지를지언정, 현실의 사회면 소식은 꺼림칙하다. <기억의 집>은 바로 그런 사회적 공포, 슬픔이 배어든 우리 곁의 비극을 건드린다.
말초적 공포를 넘어, 사회적 슬픔으로 접속할 가능성의 호러
대개 공포 장르는 선악을 극명하게 대비하고 일방적으로 내몬다. 희생자는 멍청하게 혹은 불가항력으로 당해야만 한다. 미지의 가해자는 강력하고 대적할 수 없는 존재다. 이런 전형성을 좀 더 풍부하게 다룰 때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혹은 과거 내력이 풍성해지면서 역전 혹은 심화를 겪는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감정을 지나치게 이입하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매듭을 짓는다. 그게 장르 영화의 정석으로 통용되곤 한다.
하지만 <기기묘묘2>는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어두운 세태를 재료로 삼되, 소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소재를 소모하는 유형의 공포는 대개 주류적 편견, 고정관념을 활용하는 데 그친다. 그런 방식으로 이 영화를 끌고 나간다면, 단편들의 결론은 지금 목격한 것과는 사뭇 달라졌을 테다.
하지만 몇몇 단편은 그런 정석에 만족하지 않고, 공포 장르라면 금기시될 방향으로 중층 구조에 도전한다. 그 결과는 끈적한 공포 + 깊은 슬픔의 조화다. 그런 성취가 이 영화를 양산되는 소위 '장르 영화' 가운데 특이점으로 남긴다.
<작품정보>
기기묘묘2 Strange2
2024 한국 공포/스릴러
2024.09.04. 개봉 78분 15세 관람가
감독 정경렬, 남순아, 구자호, 송원찬, 정재희
출연 남예빈, 이장원, 전소현, 김영선, 장리우, 이도은, 서혜인,
박충환, 노아, 하산 엠디깜룰, 조영지, 양말복
배급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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