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어도 돌이키기 어렵게? 독도가 위험하다
[강명구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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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이런 고집불통, 안하무인식 권력 행사를 뚝심 있는 리더십으로 오해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비상의료체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경제는 잘 살아나고 있으며, 채 해병 외압 의혹의 실체가 수사로 잘 드러나고 있다고 발언할 수 있겠는가. 이미 오래전부터 '벌거벗은 임금님' 상황에 빠져 있으나,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왜곡된 현실 인식은 뉴라이트 관련 질문에 대한 '잘 모른다'는 답변에서도 드러난다. 용어 정의의 혼란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친일 식민지배 미화 인사 임명의 책임을 부하에게 전가했다. 또한, 제헌헌법부터 천명된 대한민국의 법적 정통성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러한 모호한 태도와 책임 회피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사 인식과 리더십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윤 대통령에게 합리적인 토론이나 민주적 의사 수렴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사치스러운 소망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겹고 어렵더라도 대통령에게는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 또 들으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사안들이 있다. 국가의 중장기 외교안보 전략 및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윤 정부의 대일 외교는 일본의 교묘한 전략에 말려 들어 우리의 국익과 주권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0일 미국 워싱턴DC 윌러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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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의 정권 교체와 대일 정책 변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다. 비우호적 정권 때는 관계 개선을 지연시키고, 우호적 정권 때는 신속히 접근하며, 강경책과 유화책을 번갈아 구사했다. 또한 우리 사회 내 '반일-친일' 갈등을 이용해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해 왔다.
1990년 이후로만 국한해서 보자면,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양국의 진보적 흐름과 맞물린 결과였다. 무라야마 담화는 사회당 출신 총리의 일시적 변화였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리버럴 성향 일본 정부와의 예외적 합의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일본의 보수 우경화가 심화되면서 과거사 문제에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다. 2005년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우리의 강경 대응을 오히려 '감정적'이라 부각시키며 양국 관계를 악화시켰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관계 개선이 시도되었으나,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로 인해 여론이 다시 악화되었고, 결국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관계는 급격히 경색되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일본은 다시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베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나서, 2015년 12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계기로 일본은 다시 강경책으로 선회했다. 아베 정부는 이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2019년 7월 우리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했다. 이 조치는 단순한 경제 조치가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굴복을 강요하는 정치적 조치였다.
우리의 정권 교체마다 바뀌는 대일 전략은 일본의 교묘한 외교에 이용당해 협상력만 떨어뜨렸고, 결국 일본은 우리에게서 더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 윤 정부의 급격한 대일 정책 전환을 일본은 자국 외교의 승리로 볼 것이다.
▲ 독도의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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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일본은 미국과 연계하여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추진했다. 2022년 하와이 인근에서의 '퍼시픽 드래곤' 합동훈련을 시작으로, 2024년 동중국해에서의 '프리덤 에지' 훈련, 3국 해군 합동훈련 등을 통해 한국을 미일 주도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 빠르게 편입시켰다. 이는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일본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의 국익과 주권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 윤 정부의 양보에 일본은 더 강한 요구로 화답하고 있다. 최근 일본 방위상은 독도 관련 훈련을 일절 중단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고, 윤 정부 출범 이후 수십 차례 독도 근방에 군함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일본은 독도 도발 수위를 계속 높일 것으로 보인다. 독도 문제가 한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되면 미국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을 중국 견제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어, 오는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한일 관계의 경색이나 위기를 수수방관할 수 없는 처지다.
윤 정부는 내년 6월 한일 기본조약 60주년을 맞아 '신한일공동선언'과 같은 공동합의를 통해, 정권이 바뀌어도 회귀하기 어려운 수준의 대타결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윤 정부 최대의 외교 치적으로 역사책에 기록되길 희망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독도 도발 수위를 높이면 높일수록 그 협상 과정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한미 양국을 상대로 한 전략적 '꽃놀이패'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일본은 한일 갈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고 자국 이익을 극대화해왔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 2015년 위안부 합의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는 미일 동맹을 한미동맹 보다 우선시하는 미국의 입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패턴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과정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났다. 당시 일본은 미국 측 협상 대표자들에 대한 로비를 통해 독도 영유권 문제를 협정에서 배제시켰고, 이에 반발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1월 '평화선'을 선포하며 독도를 우리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에 일본은 미국의 개입과 중재를 요청했고, 미국은 이승만 정부에 원조 문제 등으로 다각적인 압박을 가했다.
최근 일본이 독도 도발 수위를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은 윤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발의 수위를 끌어올리고, 한일 관계의 긴장과 갈등도 상당 기간 감수할 것이다. 이는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고, 결국 윤 정부에 대한 외교적 압박과 양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독도와 관련해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 정치권의 극우화다. 일본 국회의원 중 상당수는 2~3세 정치인들로, 많은 이들이 극우 성향의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다. '일본회의'는 천황 중심 국가 체제 복원,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교육 칙어 복권, 전후 평화 교육 폐지를 목표로 하는 극우 조직이다. 이들은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도 독도를 더욱 쟁점화해 나아갈 것이다.
▲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4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핵 오염수 5차 해양투기(2차 연도) 규탄 및 한국 어민 손해배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윤석열 정권이 대일 굴욕외교를 하고 있다며 규탄한 뒤 "핵오염수 해양투기 즉각 중단!", "한국 어민피해 배상" 등을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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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분노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일본의 숨은 의도를 꿰뚫어 보며 분노하고 있음에도, 윤 정부는 마치 일본을 위해 순교할 각오라도 한 듯 무모한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폭주 열차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윤 정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저항과 반발이 필요하다.
더 이상 공허한 읍소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즉각 행동에 나서 정부의 독단적 국정 운영을 저지하고,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균형 잡힌 대일 전략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우리의 주권과 존엄이 걸린 문제에서 침묵은 곧 공모다. 지금은 행동으로 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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