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사람을 미치게 해요" 부동산 욕망, 일본도 똑같다

지유석 2024. 9. 2. 13: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넷플릭스 시리즈 <도쿄 사기꾼들>

[지유석 기자]

일본은 1980년대 거품경제를 겪으면서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다. 특히 부동산 부문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다 도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며 '잠시나마' 부동산 경기가 활력을 얻는가 했다.

바로 이 시기 지면사(일본어 발음 '지멘샤', 地面師)라고 불리는 부동산 사기꾼들이 활개 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7부작 <도쿄 사기꾼들>(일본어 원제 '地面師たち')은 이들의 사기극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지면사는 고도의 부동산 관련 법률 지식과 정보를 갖춘 집단이다. 부동산을 팔고 싶어 하는 토지주를 연기하기 위해 '배우'를 섭외하는가 하면, 신분증과 인감 위조기술까지 갖췄다.

작정하고 속이면...
 넷플릭스 시리즈 '도쿄 사기꾼들' 중 한 장면
ⓒ 넷플릭스
이들의 수법을 자세히 살펴보자. 행동대원 다케시다가 정보를 수집해 오면, 리더 해리슨 야마나가(도요카와 에츠시)가 선별해 사기극을 기획한다. 판이 짜이면 고토(피에르 타기)와 츠지모토 타쿠미(아야노 고)가 행동대원 역할을 수행한다. 그 사이 레이코(코이케 에이코)는 토지주를 연기할 배우 섭외한다.

이들은 적절히 협력하며 상대를 속인다. 치밀하기로 따지자면 일본인들은 세계 최고 수준 아닐까. 그래서 인지 토지주가 본인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꼼꼼한데도, 지면사들은 이 확인 절차 마저 능수능란하게 피해 간다. 작정하고 속이려는 자들 앞에 시스템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해리슨 야마나가란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다. 해리슨이 사기극을 벌이는 목적은 돈이 아니다. 그보다 표적을 유인해 숨통(?)을 끊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누구라도 자신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면 가차 없이 군다. 해리슨역의 도요카와 에츠시의 연기는 '다이하드' 1편에서 악당 한스 그루버로 분한 고 알란 리크만의 연기와 묘하게 겹친다. (실제 해리슨은 극 중에서 한스 그루버를 언급한다.)

츠지모토 타쿠미는 보다 복잡한 캐릭터다. 그는 부동산 사기로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해리슨은 그를 눈여겨보고 '지면사'로 키우기로 한다. 타쿠미는 해리슨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명철한 지면사로 변신해 나간다. 배우 아야노 고는 츠지모토 타쿠미를 연기하는데,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다가 지면사로 변신하는 타쿠미 역을 잘 표현한다.

대개 범죄물은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 <도쿄 사기꾼들>은 오히려 지면사의 활약상(?)을 다소 미화한다. 동시에 해리슨의 입을 통해 토지소유욕이 부질없음을 말하기도 한다. 해리슨은 과업을 마친 츠지모토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모든 땅은 태곳부터 거기 존재했을 뿐입니다. 야생동물은 영역에 대한 인식은 있을지 몰라도 땅에 대한 소유욕은 없죠. (중략) 땅을 소유한다는 집착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땅은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닌데, 인간의 머릿속에서 토지 소유란 개념이 생겨났고 그로 인해 전쟁과 살육을 계속해 온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인류의 역사는 토지쟁탈의 역사입니다. 땅은 사람을 미치게 해요."

해리슨은 인간의 토지소유욕망을 제대로 간파한 듯하다. 그가 사기극을 벌이는 궁극의 목적은 이런 욕망을 건드리면서 사람을 농락하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해리슨은 인간이 토지 소유욕을 버리지 않는 한 세계 어디에서든 비슷한 방식으로 이 욕망을 건드리는 사기극이 벌어질 것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드라마에 담긴 일본의 현실
 넷플릭스 7부작 ‘도쿄 사기꾼들’ 주인공 해리슨 야마나가는 인간의 토지소유욕망이 부질없음을 갈파한다.
ⓒ 넷플릭스
이 드라마는 저출생·고령화 사회 일본의 현실을 생생히 드러내기도 한다. 지면사들은 주로 고령에다 노환으로 인지능력을 상실한, 그래서 재산권 행사가 취약한 노인들이 소유한 땅을 노린다. 독거노인 소유 부동산, 그리고 현금은 범죄자들의 집중 표적이다. (일본은 한동안 제로 금리였고, 그래서 노인들은 은행에 돈을 맡기기 보다 집에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 기자 말)

저출생은 또 다른 단면이다. 극엔 혼혈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면사를 쫓는 도쿄 경시청 신참내기 쿠라모치 순경이다. 쿠라모치는 참신한 감각으로 지면사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그의 외모는 무척 이국적이다. 쿠라모치 역을 맡은 배우는 이케다 이자벨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필리핀계 혼혈이다.

여기서 혼혈이랑 저출생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일본은 수십 년간 저출생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이 공백을 외국인 이민자나 결혼 이주여성이 채우는데, 드라마에서도 이 배경이 담겼다. <도쿄 사기꾼들>은 다문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척됐음을 보여준다.

결국 <도쿄 사기꾼들>은 토지 소유욕을 제대로 비판하고, 동시에 일본 사회 현 풍속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7부작 ‘도쿄 사기꾼들’(일본어 원제 ‘地面師たち’)는 부동산 사기꾼 ‘지면사’가 벌이는 사기극을 사뭇 흥미진진하게 그리는 수작이다.
ⓒ 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주 한인매체 <뉴스M>,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