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욱일기 휘날리면, 가슴 뜨거워지는 사람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2015년 10월15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정박 중인 일본 해상자위대의 함선에 욱일기가 게양된 모습. |
ⓒ 연합뉴스 |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새해 국방예산에 광복 및 해군 창설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제관함식 예산 약 40억 원이 편성된 사실이 보도되면서, 내년 5월에 열릴 이 행사에 욱일기를 게양한 자위대 함정이 들어올 가능성이 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28일 도쿄에서 한미일 국방부 장관 회담을 마친 신원식 장관은 욱일기 형상의 자위함기가 국내에 입항하는 것에 대해 "자위함기가 일본 해상자위대의 공식 깃발이라는 것이 국제관례로 인정된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발언했다. 욱일기가 우리 영해 내에서 게양되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최종일 해군 서울공보팀장은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국제 관함식 개최를 계획하고 있지만, 초청 대상국은 현재 검토 중에 있다"라고 말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도 "아직은 어떤 국가들이 참석하게 될지 정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자위대 함정이 내년 5월에 욱일기를 달고 입국하는 것을 윤석열 정부가 반대하게 되면, 지난 2년간의 국정 기조가 일거에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이를 윤석열 정부가 반대할 가능성은 낮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인 2022년 11월 6일 한국 해군이 자위대 관함식에서 욱일기에 경례한 일, 2023년 5월 29일 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달고 부산항에 입항한 일이 있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내년 5월에도 욱일기를 단 자위대 함정이 입국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관함식이긴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런 금기를 개의치 않는다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의례적인 국제 행사에 욱일기를 달고 들어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위대 내부의 최근 흐름을 감안하면 그런 생각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욱일기의 한국 출현이 자위대 내의 심상치 않은 기운과 연결될 가능성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 일본 패전일인 지난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이들이 욱일기를 들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런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그해 12월에 나온 신도지령(神道指令)이다. 정식 명칭이 '국가신도와 신사신도에 대한 정부의 보증·지원·보전·감독·선전의 금지에 관한 건'인 신도지령의 핵심 내용은 국가와 신도의 연결을 끊고 정교분리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신사에 대한 공적 지원, 신사 연구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국공립학교의 존속, 국가에 의한 신도 관련 서적의 배포, 공문서에서 대동아전쟁 용어 등의 사용, 국공립학교의 집단적 신사 참배, 신사 봉납금의 모집, 공공단체의 신사 참배, 충혼비나 충령탑 건립 등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이와 더불어 공무원 같은 공인들의 신사 참배도 엄금됐다. 야스쿠니신사 등을 매개로 일본인들이 군국주의 결집을 시도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조치였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는 총리·장관·국회의원뿐 아니라 자위대 대원들까지도 노골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지난 2023년 5월17일에는 도쿄에서 연수 중이던 해상자위대 간부후보생 165명 중 상당수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 장면은 그해 7월 신사 화보에까지 실렸다.
이런 식의 참배는 일본 방위성 내부 규정에 의해서도 금지된다. 그래서 한 개인의 자위대 경력에 흠집이 될 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퇴역을 앞둔 대원들이 아닌 앞날이 창창한 간부후보생들이 이런 일을 감행했다. 자위대 안에서 군국주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지 않다면, 간부후보생들이 이런 일을 대담하게 벌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올해 1월 9일에는 육군참모차장에 해당하는 고바야시 히로키 육상막료부장(副將)이 운전사가 배정된 관용차를 타고 자위대원 수십 명을 거느린 채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관용차를 타고 야스쿠니를 방문하면, 1945년 이래 금지된 '공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비치기 쉬운데도 굳이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고바야시는 방위성에 출근한 뒤 야스쿠니로 나섰다가, 참배가 끝난 뒤에는 방위성으로 돌아갔다. 공적 참배로 비치도록 신경을 썼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는 훈계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정도 징계를 무서워했다면, 그처럼 과감한 연출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5월 10일에도 해상자위대 간부후보생 200여 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갔다. 이 일은 3개월 뒤인 이달 14일 <아사히신문>에 보도됐다. 이 보도에서는 이들이 신사 박물관인 유수칸을 견학했다고 전했다.
1882년에 설립된 유수칸은 일본군 전사자들을 위령하고 현창하는 시설이다. 설령 신사 참배가 없었다 할지라도, 군국주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이 시설을 집단 견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위대 내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군국주의 기운이 자위대 내에 퍼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인들의 눈에도 위험하게 느껴지는듯 하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달 3일 도쿄에서 열린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 속'이라는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자위대와 야스쿠니가 결합을 강화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일본 민중이기도 하다. 자위대와 야스쿠니의 결합으로 인해 일본 민중이 또다시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일본 내에서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지난 2023년 5월 30일 다국적 해양차단훈련 ‘이스턴 앤데버23’에 참가하는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함이 욱일기의 하나인 '자위함기'를 게양한 채로 부산 남구 백운포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해 있다. |
ⓒ 김보성 |
일본은 하급 사무라이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올라서는 1868년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대외팽창적인 국가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되기 얼마 전부터 일본 내에서는 한국을 정복하자는 기운이 고조됐다. 이 시기 하급 무사들은 조선을 수중에 넣어야 세계 침략이 완성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 같은 정한론의 선구자인 요시다 쇼인은 "옛날 성시(盛時)와 같이 조선을 공격하여 공물을 바치게 하고, 북쪽으로는 만주 땅을 손에 넣고, 남쪽으로는 타이완과 루손제도를 취하여 일본 땅으로 삼아 더욱 진취의 기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옛날 전성기 때 한국이 일본에 조공을 했다'는 가짜 역사를 근거로, '일본이 한국을 시작으로 만주·대만·필리핀을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기독교사상> 2021년 12월호에 실린 홍이표 야마나시에이와대학 교수의 기고문 '일본 극우의 탄생과 종교적 배경'은 요시다 쇼인이 마지막에 남긴 "내 몸은 비록 죽지만 야마토다마시(일본혼)는 반드시 세상에 남기리라"는 유언을 소개한다.
그런 다음 "요시다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은 그의 죽음을 계기로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되었고, 이후 대만과 한국 등 동아시아 침략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한다. 뒤이어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 미우라 고로,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타케, 소네 아라스케, 하세가와 요시미치처럼 한국 침략에 가담한 요시다 쇼인의 문하생들을 거명한다.
과거 역사가 미래에도 똑같이 되풀이된다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지금의 일본 극우는 군국주의 시절의 선배들을 참고하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 시절의 선배들이 정한론을 발판으로 세계침략을 전개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는 한국에서 욱일기가 자주 휘날리는 일이 고무적인 현상이다. 윤석열 정부가 욱일기 단 자위대 함정을 끌어들이는 일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도 위험하다. 그것은 일본 극우의 가슴을 뜨겁게 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 등이다. 자위대의 공식 깃발이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너무 안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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