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잔존가치 선반영, 전기차 캐즘 돌파 묘수 될까

박영국 2024. 9. 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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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내연기관 대비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 진입장벽 높아
전기차 수명주기 도래 후 배터리 잔존가치 선반영시 가격 인하 여력 확보
직접 판매시 걸림돌 많은 車-배터리 소유 분리, 리스 상품은 가능
캐스퍼 일렉트릭. ⓒ현대자동차

전기자동차의 높은 가격이 여전히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전기차의 원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잔존가치를 선반영한 리스 상품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2일 ‘전기차 캐즘 극복을 위한 과제’ 보고서를 통해 “초기시장과는 달리 앞으로 전기차 캐즘을 극복하고 대중의 신규구매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가격의 중요도가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현진 한국자동차 선임연구원은 전기차 가격 인하를 위한 여러 노력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전기차 가격은 구매보조금 적용시에도 내연기관차보다 높아 필수재보다는 사치재에 가까운 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2018년 현대자동차 코나 EV의 국내 판매가격은 세제혜택 적용 시에도 4750만원으로 가솔린 모델(2160만원) 대비 약 120% 높았다. 그동안 전기차의 상대 가격이 다소 내려가긴 했지만, 2023년에도 코나 EV의 국내 판매가격은 보조금 미적용 기준 5075만원으로 가솔린 모델(2850만원)에 비해 78% 높은 수준이다.

이같은 가격 장벽은 전기차가 얼리어답터 시장을 넘어 본격적인 대중화 시장에 진입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 선임연구원은 “초기 소비자의 경우 제품의 혁신성, 성능, 디자인 등이 구매 동기로 작용하는 반면, 대중 소비자의 수요는 가격적 측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기차 시장이 점차 성숙됨에 따라 초기 구매 수요가 완결되고 있고, 향후 대중 소비자의 수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가격의 중요성이 높아질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이같은 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전기차의 가격경쟁력을 단기간 내에 끌어올리긴 쉽지 않다. 전기차 제조원가의 40%가까이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 때문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가격이 내려가려면 원가비중이 높은 배터리의 가격을 낮추고 에너지 효율은 높이는 기술적 진보가 이뤄져야 하는데, 내연기관 수준까지 맞추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 기술력 수준에서 가격경쟁력을 높이려면 대량생산체제, 즉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 되는데, 결국 전기차 대중화가 선결 조건 아니겠느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캐스퍼 일렉트릭 '배터리 케어리스' 배터리 잔존가치 선반영으로 가솔린차 대비 가격 낮춰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와 현대캐피탈이 최근 출시한 배터리 잔존가치 선반영 리스 금융 상품 ‘배터리 케어리스’가 주목받고 있다. 소형 전기차 캐스퍼 일렉트릭을 대상으로 하는 이 상품은 배터리의 수명주기를 감안, 재사용과 재활용시의 잔존가치를 리스 가격에 반영해 소비자 부담을 줄인 게 특징이다.

배터리 케어리스를 이용하면 통해 캐스퍼 일렉트릭을 월 27만3000원에 탈 수 있다. 하루 9000원 꼴이다. 이는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고 크기도 더 작은 경차 캐스퍼 리스 가격(28만7000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일반 리스 가격(31만7000원)과 비교하면 배터리 케어리스가 월 4만4000원이나 저렴하다.

캐스퍼 일렉트릭 배터리 케어리스는 소비자가 신차를 리스해 타고 5년이 지나면 차를 반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반납된 차량은 현대캐피탈이 인수해 다시 5년간 중고차 리스 형태로 운영한다. 이렇게 총 10년간 운영된 캐스퍼 일렉트릭은 폐차되지만, 배터리는 재활용, 혹은 재사용된다.

수명이 길게 남아 재사용이 가능한 배터리는 내부 부품을 교체한 후 농업용 전기차, 전기 자전거, 캠핑용 충전기, ESS 등에 활용한다. 재사용이 불가능한 배터리는 해체해 리튬, 니켈 등의 원소재를 추출, 새로운 배터리를 제조하는 데 재활용된다.

배터리 잔존가치 선반영을 통해 전기차 가격을 낮추는 아이디어는 그동안 완성차 및 배터리 업계에서 자주 언급돼 왔다. 전기차 수명주기만큼 사용한 후에도 배터리 용량은 신제품 대비 70%가량이 남아 있고 이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활용할 수 있으니 전기차 판매시에 이를 반영하자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자동차와 배터리의 소유를 분리하는 방식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부 및 지자체와의 행정 절차 조율 등이 걸림돌이었다.

현대차와 현대캐피탈은 리스 상품에 이같은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걸림돌을 해결했다. 애초에 ‘소유’와 ‘사용’이 분리된 리스 상품의 특성상 소비자의 거부감은 문제될 게 없고, 보조금도 제조사가 직접 적용받는 만큼 소비자가 신경 써야 할 복잡한 절차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배터리 잔존가치 선반영을 통한 전기차 가격 인하는 리스 방식을 통하는 게 가장 무리가 없다”면서 “캐스퍼 일렉트릭의 관련 리스 상품이 기존 리스 고객을 성공적으로 흡수한다면 전기차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성공 사례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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