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견의 또 다른 고리 끊기

박윤준 2024. 9. 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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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준]

23명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에스코넥-아리셀 참사가 불법 파견과 관련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공동행동 출범을 한창 준비 중이었던 동료들은 모두 '건국우유'를 떠올렸다고 얘기했다. 참사 피해자 대부분이 중국 동포였고, 이주 노동자였다는 사실도 연관성을 더 했다.

학교법인 건국대학교가 운영하는 수익사업체 건국유업·건국햄(아래 건국우유)은 1999년부터 음성군 대소면에 있는 대풍산업단지에 공장을 짓고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2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그중 약 50명 정도로 추정되는 인원들은 건국우유 소속이 아니었다.

건국우유의 생산 공정은 이렇게 분류된다. 탱크에 보관하고 있는 살균 우유를 용기에 주입하는 공정, 우유가 들어간 용기들을 포장하고 분류하는 공정, 상자들을 화물 차량에 싣는 작업, 사용된 플라스틱 우유 상자를 세척하는 작업. 여기서 첫 번째 공정은 자동화율이 매우 높은 편이고, 건국우유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해당 공정에서 일하고 있다. 두 번째부터 마지막까지 공정 또는 작업은 자동화율이 낮은 작업으로 수작업이 필요한 고된 작업이다. 건국우유는 공장 한가운데 가벽을 치고, 두 번째부터 마지막까지 작업은 하도급업체에 맡겼다.

올해 2월부터 서울 영등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제이앤비맨파워라는 인력 도급업체가 건국우유로부터 도급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이전에는 ㈜티아이시스템이라는 업체가 1년간 도급을 맡았고, 그 이전 2년 동안에는 지금의 ㈜제이앤비맨파워가, 또 그 이전에는 휴먼코아가 맡았다고 한다. 이렇듯 건국우유는 1년 또는 2년 기간 동안 인력 도급업체를 수시로 교체해가며 주요 공정들을 맡겨왔다.

인력 도급업체는 이렇게 수시로 바뀌어왔지만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거의 그대로였다. 이들 중 30여 명은 인력 도급업체 소속이 또 아니었다. 이들은 대소면에 있는 직업소개소 '돼지인력'과 정체성이 불분명한 '다움산업'이라는 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다움산업은 '케이인력'이라고도 불리었는데, 두 이름 모두 음성군에 등록된 업체명이 아니었다. '돼지인력'은 한때 500명 가까운 노동자들을 '보유'하면서 공장과 농장 등지로 파견 보냈다. '돼지인력'은 이들에게서 매일 일당의 10~20% 이상에 해당하는 금품을 '소개요금'이라는 명목으로 오랜 기간 받아왔다.

7년 전 원남산업단지에 있는 신세계푸드 음성공장 불법 파견과 대량 임금 체불 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적이 있었다. 지역 직업소개소와 전국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형 인력 도급업체가 신세계푸드 음성공장의 생산 공정을 도맡고 있었고, 1년간 1억 8000여 만 원의 임금이 미지급되고 있을 정도로 노동 착취가 심각했다. 신세계푸드 음성공장은 당시 고용노동부 충주지청의 근로감독을 받았는데 체불된 임금에 대한 지급 책임과 불법 파견으로 인한 사법적 책임은 직업소개소 사업주의 몫이었다. 사내 하도급업체는 그동안 '빌려' 사용하던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할 책임을 졌고, 원청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근로감독청원을 주도했던 이들에게는 원청업체인 신세계푸드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고 모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투쟁을 이어가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간접고용에 놓여 있는 노동자 당사자들을 규합해내지 못했던 한계가 있었다.

그로부터 7년 뒤 비슷한 사정에 있는 일용직 노동자가 음성노동인권센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일흔이 넘은 그는 난생처음 직업소개소를 통해 9개월 넘게 건국우유 공장에서 상자를 세척 하는 일을 했는데, 하루아침에 사내 하도급업체 관리자로부터 해고를 당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직업소개소와 사내 하도급업체, 원청업체 간의 불법적인 계약 관계를 통해 자리 잡은 음성화된 일자리는 '노동권 사각지대' 그 자체였다. 극도로 불안정한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자리로 모여든 사람들은 공식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지역의 고령 노동자, 이주 노동자, 신용불량자들이었다. 그는 노동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사내 하도급업체 관리자의 태도에 분노했고, 이 문제에 대해서 원청인 건국우유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현실에 분개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국우유 대표이사에게 편지까지 썼지만 어떠한 응답도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

법대로만 처리한다면 또다시 직업소개소 사업주가 처벌받고,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사내 하도급업체에 직접고용되는 방식으로 마무리될 사건이었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해도 건국우유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게 될 것이라는 설명에 그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그나마 신용불량자인 자신에게 일자리를 연결해 준 직업소개소 사업주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마저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같이 다른 일용직 노동자들이 부품처럼 하루아침에 내동댕이쳐지는 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며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내게 말했다. 센터는 내부 회의를 거쳐 건국우유 불법 파견, 간접고용 문제를 원청업체인 건국우유가 책임질 수 있도록 전국적인 사안으로 확장 시키고, 지역에서 투쟁을 모아보기로 결의했다.

건국우유의 수익금 전액이 건국대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전액 출연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이 문제에 함께 대응할 건국대학교 학생 주체들을 찾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건국대학교 거의 모든 동아리와 총학생회, 학과별 학생회에 메시지를 보냈지만 애석하게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실마리는 노학연대 활동을 열심히 벌이고 있는 학생사회주의자연대 활동가에게서 찾았다. 서울지역 인권연합동아리에 가입해있는 건국대 인권동아리가 있었고, 동아리 지부장을 맡은 학생을 소개받았다.

건국대 인권동아리는 건국우유의 간접고용과 중간착취 대응에 함께해달라고 하는 센터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또 다른 학내 주체인 교수들의 참여를 모색하고자 교수노조에도 제안을 돌렸다. 아쉽게도 현재 교수노조에 가입해있는 건국대학교 교수는 없었지만, 대학교 수익사업체 문제를 학교 담벼락을 넘어선 공동의 주제로 받아들이고 행동에 함께하기로 해주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학생사회주의 자연대도 동참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그리고 지난 7월 17일 우리는 건국대학교 상허문 앞에서 '건국우유 불법 파견/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을 출범시켰다.
 7월 17일, 건국대학교 상허문 앞에서 열린 건국우유 불법 파견/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
ⓒ 스튜디오 알
감사하게도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들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단체들이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 공동주최 단위로 이름을 올려주었다. 이날 출범 기자회견에서 공동행동은 음성지역과 서울지역 간의 연대, 지역 노동자와 학내 주체 간의 연대를 통해 건국우유 불법 파견과 간접고용 문제를 전국적인 사안으로 확대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진짜 사장인 학교법인 건국대학교에 건국우유가 공장 내 모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그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대학에서 건국우유를 경영하며 발생한 수익금은 대학의 장학금으로 사용된다. 노동자들의 눈물과 피로 일군 장학금을 거부하겠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인권동아리 부지부장 이인진님의 발언이다. 기자회견에는 열 명이 넘는 동아리원들이 참석하였는데, 커다란 우유갑의 성분표에 불법 파견과 간접고용, 노동권 침해를 적어 놓고 나중에는 이를 떼어내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떼어낸 곳엔 '불법 파견 철폐! 간접고용 폐지! 하청 노동자 직접고용!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이라는 새로운 성분표가 적혀 있었다. 학생들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참여 덕분에 음성에서 올라온 일용직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기운을 받았다며 흡족해했다.

앞으로는 건국우유 공장을 포함해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일하고 있는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를 대대적으로 조직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간접고용의 폐해가 무엇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노동권이 무엇인지 간담회와 설명회를 열고 모임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생산 공정을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감내하고 있는 이들이 수십 명이라도 모인다면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막막한 현실의 벽을 마주한 느낌이지만, 곁에서 함께할 동료들을 만나 기쁘다. 용기를 내어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어보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에도 실립니다.글쓴이는 박윤준 건국우유 불법 파견/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8호 9, 10월호 '여기, 현장'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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