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니
[오정오 기자]
▲ 전국 마을교육공동체 대화모임 in 세종. |
ⓒ 오정오 |
마을교사와 작은도서관
세종 마을교사들과 함께 전의면 푸른작은도서관 이야기를 들었다. 세종의 마을교육공동체와 작은도서관의 콜라보였다. 마을교육이 도서관을 왜 만나야 하는지,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도서관은 활동가의 삶이 요구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몇 년 전, 교육잡지 '민들레' 기획 특집 제목이 '도서관과 민주주의는 같이 간다'였다. 도서관 '운영'이 아닌 도서관 '운동'이 먼저라는 것이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출하는 공간을 넘어, 일상에 주민과 청소년을 만날 수 있는 '말없이 말을 걸 수 있는 막강한 장치'였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도서관은 민주주의의 주춧돌'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민의 30% 정도가 도서관 회원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안수찬 상임이사는 도서관 회원증을 도서관 운동을 다음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디딤돌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회원증이 생기고 나면, 첫 번째 단계인 '단순 이용자'에서 그다음 단계인 '지지자', '후원자'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민'이자 '활동가'로 그 위치가 변함을 의미한다. 즉 도서관을 통해 자기 자신과 이웃, 나아가 지역을 바꾸는 것이다. 세종 푸른작은도서관장님이 강조한 주민들 사이의 만남과 연대가 지향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이런 관점에서 마을교육공동체를 생각해본다.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은 이제 10년을 넘어가고 있다. 그 10년 동안 함께한 주민 교사 참여자를 헤아리면 그 숫자가 엄청날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교육청 마을활동가(마을교사) 역량강화 연수와 각종 공모 사업에 많은 단체와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도서관으로 치면 도서관 회원증을 발급받고, '단순 이용자'에서 다음 단계인 '지지자'나 '후원자'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참가자의 '지지'는 시간이 갈수록 '좌절과 포기'로, '후원'은 '번아웃'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푸념이 대화 모임 때마다 터져 나오고 있다. '시민'을 만든다는 세 번째 단계는 갈수록 멀어지는 느낌이다. 마을교육공동체가 어느 순간 '운동'에서 '운영'으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뼈아프게 들린다.
세종 활동가들은 올해 창립한 세종마을교육협의회 활동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협의회라는 민관 거버넌스를 통해 초창기 관 주도 '운영'에서 주민의 '목소리'를 불어넣고 있다고 했다. 관이 중심이 되어 관성적으로 '운영'한다면 그 끝은 자명하게도 관료제로 귀결된다. 반면 주민의 목소리는 점차 커진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숙성을 의미한다. 민주주의(民主主義)는 말 그대로 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의 목소리
다시 처음 돌아가 묻는다. 도서관은 민주주의 주춧돌이라는데, 마을교육공동체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지고 있는가. 즉 민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민이 주인이 되고 있는가 묻게 된다. 이 길이 맞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얼마쯤 온 것일까.
주민 참여 수준을 가늠하고 싶을 때, 아른슈타인(1969)의 '주민 참여 사다리 이론'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참여자의 행동 양식에 따라 참여 수준을 크게 비참여, 명목 참여, 참여로 구분하고 이를 8단계로 세분화하였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주민 참여 수준이 높다고 본다. 다음 8단계 중에서, 여러분의 마을교육공동체는 어디쯤에 있는지 따져보길 권한다.
<비참여 단계>
1. 조작(Manipulation): 정책 지지를 위해 주민을 조작하는 단계. 이 단계에서는 주민들이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참여하지 않고 외부 결정권자나 기관에 의해 조작당하는 것. 주민들은 실질적인 영향력이 없음.
2. 치료(Therapy): 관이 주민을 임상적 치료 대상으로 간주하는 단계. 이 단계에서 주민들은 정보와 교육을 통해 사회적 이해력을 향상시키고 자기 개선을 목표로 하는 활동에 참여함. 그러나 여전히 실질적인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않음.
<명목참여 단계>
3. 알림(Informing): 일방적으로 정보만 제공하는 단계. 주민들은 정보를 제공받고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정보를 받지만, 이것은 양방향 피드백이 없는 일방적인 과정임.
4. 상담(Consultation): 주민의 아이디어만 수렴하는 단계. 주민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나, 이것은 의사결정권자가 주민의 의견을 수용하거나 채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임.
5. 달래기(Placation): 위원회 등 주민 참여 확대되나 결정은 관이 하는 단계. 주민들은 실질적인 결정에 제한적으로 참여하고, 그러나 의사결정권자가 주민의 의견을 달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음.
<참여 단계>
6. 파트너십(Partnership): 민과 관이 동등하나 최종 결정은 관이 하는 단계. 주민들은 공식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의사결정권자와 협력하는 관계를 형성함.
7. 권한 위임(Delegated Power): 주민이 주도하는 단계. 주민들은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받아 중요한 결정을 함께 만들거나 개정할 수 있음.
8. 주민 통제(Citizen Control): 주민들은 모든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고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통제하고 직접 참여함.
어떠한가.
우리는 비참여 단계를 벗어났다고, 그리고 참여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보는 지역은 여전히 '조작'과 '임상 치료와 처방'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공무원의 일방적 교육과 설득, 지역유지 중심의 자문위원회, 사회적 약자의 환자화, 미봉적인 구조적 해결 지향을 종종 본다. 파트너십, 권한 위임, 주민통제라는 주민참여는 언감생심으로 느껴진다. 마을교육공동체을 통해 우리 지역의 주민 참여 사다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진전하고 있는가 묻는다면, 솔직히 회의적이다.
민주주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관료주의라 한다. 민주주의는 요원한데 마을교육공동체를 둘러싼 관료주의의 그림자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마을교육공동체가 주민 참여 사다리 오르기를 소홀하거나 회피했을 때(게다가 교육청과 지자체의 정책 방향이 엉뚱한 곳을 향하거나 바뀔 때) 우리가 겪게 될 상황은 날개 없는 추락, 바닥 밑 지하실로, 한방에 훅 날아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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