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그의 후회, 펄쩍 뛴 머스크... 텔레그램의 운명은?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목수정 기자]
▲ 2015년 9월 21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피어 70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SF 2015'에서 텔레그램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파벨 두로프가 연설하고 있는 모습. |
ⓒ AFP/연합뉴스 |
500만 유로(약 74억 원)의 보증금 예치와 일주일에 두 번 경찰 출석, 프랑스 영토를 벗어나지 말 것이 석방을 위해 제시된 조건이다. 2021년 프랑스 국적을 획득한 그는 프랑스 시민권자이기도 하다.
나흘 간의 조사를 마친 파리 검찰청이 그에게 부여한 혐의는 '프랑스 정보기관의 감청에 필요한 정보 전달 거부', 텔레그램 플랫폼에서 진행되는 각종 조직 범죄(마약 밀매, 아동 포르노 조직 범죄, 사기, 조직적 자금 세탁 등 12가지)공모 혐의, 사용자의 기밀을 보장하는 암호화 서비스 제공' 등이라고 밝혔다. 또한 스위스에 거주하는 전처가 2023년에 고발한 자녀 폭행 혐의도 뒤늦게 추가됐다.
파벨 두로프에게 제기된 죄목들은 인터넷 플랫폼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광범위한 각종 범죄들을 총망라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에게 묻는 구체적인 혐의는 텔레그램에서 활약하는 범죄조직에 대해 당국이 요구하는 감찰·검열에 대한 협조 거부로 집약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창 제기되고 있는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이 실질적 사례로 프랑스에서 지목되는 사건은 현재로선 전무한 상태다.
암호화된 메시지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고, 검열 없는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알려진 텔레그램이 이처럼 수사기관으로부터 수난을 겪었던 것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14년 파벨 두로프는 우크라이나 집회 사태와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관련 계정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검열 요청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면서,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러시아의 과도한 규제와 관료주의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조국인 러시아를 떠나 두바이에 정착하여 거주해 왔다.
2018년에는 메신저 암호 해독 키를 공개하라는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요구를 텔레그램이 거부하자, 러시아 정부는 자국 내에서 텔레그램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텔레그램 측이 테러와 극단주의에 맞서는 러시아 정부의 입장에 협조하기로 하면서, 텔레그램 서비스가 재개됐다.
2015년 파리 테러 이후 여러 이슬람 테러 조직이 텔레그램에 방을 두고 있던 것으로 밝혀지고, 텔레그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이때 텔레그램 측은 78개에 이르는 지하디스트 조직의 방들을 폐쇄하는 등, 테러 조직과 관련해선 제재에 협조해 오기도 했다.
▲ 텔레그램 로고 |
ⓒ AFP/연합뉴스 |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나흘간의 구금과 최고 20년형의 처벌까지 언급되는 강도 높은 혐의 추궁은, 인터넷 플랫폼 대표를 향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억압이다.
나아가 텔레그램에 대해선 EU(유럽연합)가 2022년에 채택, 2023년 8월부터 발효되기 시작한 디지털 서비스법(DSA:Digital Services Act) 위반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해당법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12월 EU 집행위가 제안해서 2022년 12월 채택되었고, 2023년 8월부터 효력이 발생하였으며, 2024년 2월 부터 페이스북,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엑스 등 45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대형 인터넷 플랫폼들에 모두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텔레그램은 EU 내 월간 이용자가 4100만 명이라고 집행위원회에 보고해 대형 인터넷 플랫폼 지정을 피했으나, 파벨 두로프의 구금을 계기로 집행위원회는 월간 이용자 수 축소 신고 의혹 등 디지털 서비스법 위반 혐의를 조사 중이다. EU는 프랑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파벨 두로프에 대한 조사는 EU의 조사위원회가 간여하는 일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으나, 해당법이 규정하는 내용과 프랑스 사법부가 텔레그램의 대표에게 제기하는 혐의는 겹친다.
디지털 서비스법의 이전 규정에선, 플랫폼 회사가 사용자의 콘텐츠가 불법임을 미리 알지 않는 한 해당 콘텐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새 법안에선 플랫폼 업체가 문제 있는 콘텐츠를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는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이를 거부해서 EU 집행위원회가 해당법 위반으로 최종 판단한다면, 인터넷 플랫폼 회사에게 6%에 해당하는 금융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된다.
표면적으론 불법 콘텐츠의 배포를 줄이고 온라인 플랫폼 사용자 간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는 불법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위해 끊임없이 사찰과 검열이 이루어질 것을 의미한다. 거기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수 있기에 해당법은 당초부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과 중앙집권적 감시·통제 사회로 가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
▲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가 모스크바 북서쪽 솔네쉬노고르스크에서 연방 청소년청 주최로 열린 전 러시아 청소년 교육 포럼 '테리토리야 스미슬로프'에서 연설하고 있다. |
ⓒ TASS/연합뉴스 |
특히 일론 머스크는 다음 목표는 바로 X가 될 것이라며, 파벨 두로프에 대한 즉각적 석방을 요구했다. "2030년 유럽에서는 어떠한 밈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로 처벌 받을 수도 있을 거다"라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견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7월12일 EU 집행위원회는 X가 투명성 위반 의무를 위배했다고 경고하고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어서, 일론 머스크의 우려는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11일 일론 머스크가 도날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후보와의 온라인 대화 계획을 발표하자, EU 집행위원회의 티에리 브르통 위원은 다음날 자신의 엑스 계정에서 일론 머스크를 향해 "큰 청중은 큰 책임을 의미한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날리며 엑스의 행보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음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이번 사태는, 서방의 이중적인 잣대를 드러내는 행위로 간주된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018년 러시아 법원이 텔레그램 차단을 결정했을 당시에도 두로프는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였다며 프랑스 당국의 조치를 비난했다. 또한 2018년 당시 러시아를 비난했던 서방의 비정부 인권 단체들이 이번에는 프랑스를 비난할지 침묵할지 궁금하다고도 했다.
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파벨 두로프에 제기된 혐의를 입증하려면,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억압의 시도이며, 대형 기업의 대표를 향한 직접적인 겁박이다. 이번 구금이 정치적 행위임은 명백하다"라고 평했다. 많은 러시아 시민들도 모스크바에 있는 주러시아 프랑스 대사관 앞에 텔레그램의 상징 로고인 비행기를 종이로 접어 올려놓는 집단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8월 25일자 기사에서 "설립자 체포 이후, 텔레그램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라며, 이번 사태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파악했다.
▲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월 27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입국하고 있는 모습. |
ⓒ 연합뉴스 |
또한 저커버그는 2020년 대선 무렵, 바이든의 아들 헌터 바이든에 대한 기사를 삭제한 것을 후회하며, 민주당에 4억 2천만 달러를 기부했던 지난 선거와는 달리 올해엔 선거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페이스북은 텔레그램과 정반대로 적극적으로 특정 내용, 특정 인사들의 게시물을 검열·삭제·차단해 와서 이용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정작 유명인을 사칭하는 가짜 계정들이 판치며 투자 권유와 사기에 이용되는 사례가 광범위하게 발생해도 이들은 관련 규정이 없다며 피해를 수수방관해 왔고, 정부당국도 이를 방치하는 페이스북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우린 알고 있다.
권력의 입맛과 방향에 따라 이들의 검열과 규제가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이용될 수 있는지 페이스북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양날의 검,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9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텔레그램의 성장은, 설립자 파벨 두로프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의지에 의해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팬데믹 시기에 텔레그램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당시 텔레그램이 검열당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이버상의 공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같은 텔레그램의 운영과 보안 방식이, 극단적인 범죄 집단들이 범행을 모의할 수 있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양날의 검을 지닌 공간이 된 것이다. 프랑스 여러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도 측근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 위해 텔레그램을 이용해 왔다. 그것은 국내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25일 자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파벨 드로프를 가리켜 "세상의 모든 비밀을 지니고 있는 남자"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프랑스를 필두로 EU 당국이 왜 텔레그램을 조준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다.
프랑스의 극작가 빅토르 위고는 1851년 "자유를 구하라, 그러면 자유가 나머지를 구할 것"이라고 썼다. 표현의 자유와 범죄 조직 소탕 사이에서 길잡이가 필요할 때, 우리가 떠올려야 할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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