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임종룡號]①"개인 일탈 아닌 조직문화 문제"
편집자주
우리금융그룹이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로 또 이슈의 중심에 섰다. 다른 은행들에 비해 수백억 원대 횡령, 자금유용, 배임 등 각종 역대급 금융사고가 빈발하는 이유는 뭘까. 다른 은행들은 시스템 밖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일탈 문제가 크지만, 우리금융은 오랫동안 누적된 조직문화가 핵심 원인이라는 게 아시아경제의 판단이다. 우리금융의 잘못된 조직문화를 집중 조명하고, 기사로 노출시킴으로써 우리금융이 환골탈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시리즈를 시작한다. 아시아경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금융의 조직문화 문제를 기사로 다룰 계획이다.
대형 시중은행 중 한 곳인 우리은행에서 ‘20세기에나 가능할 법한 사건’이 터지면서 우리금융과 계열사들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부실 대출, 불완전판매,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을 둘러싼 부정적 대출(부당 대출) 의혹과 이에 대한 회사의 처신은 허술한 내부통제시스템은 물론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조직문화의 구태를 그대로 노출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손 전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 사고가 터진 직후인 8월12일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 처신, 허점이 있는 내부통제시스템 등이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이는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을 이끄는 저를 비롯한 경영진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며 "상사의 부당한 지시는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런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직원을 조직이 철저히 보호하도록 기업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임 회장도 우리금융의 잘못된 조직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위계적인 상하관계로 지시가 부당하더라도 그대로 따르고, 계파와 연줄로 엮여 잘못된 관행이라도 하던 대로 업무를 처리하며, 권력 있는 윗사람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내부통제시스템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한들,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면 그런 시스템과 제도는 무용지물이다.
명예 지점장 행세한 처남, 내부조력에 인사에도 영향력?…왜곡된 조직문화 방증
이번 부당 대출 의혹의 중심에는 손 전 회장의 처남 김모씨와 전 지역본부장 임모씨가 등장한다. 김씨는 우리은행 명예지점장이라는 직함이 적힌 명함을 사용하며 서울 신도림금융센터와 선릉금융센터 등에서 손 전 회장과 관계를 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영업전략의 일환으로 지점장이 추천하는 VIP 고객을 명예지점장으로 위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김씨를 위촉한 사실이 없으며 명함을 지급하지도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미 은행 내에서도 김씨의 이런 행보는 여러 번 회자됐다. 심지어 김씨가 그룹 인사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힘이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손 전 회장의 영향력을 의식한 기회주의적 처신이 작동하면서 이렇다 할 조치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퇴직하고, 자체 감사 이후 올해 4월 면직된 전 본부장 임씨가 적극적으로 조력하면서 통제 불가한 상태가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2건의 대출 중 다수가 임씨가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왜곡된 조직문화의 대표적 사례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의 결과로 우리은행은 2001년부터 20년 동안 예금보험공사의 통제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각종 외부 입김에 시달리며 내부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 이른바 ‘은행 DNA’가 이미 훼손된 상황이라는 시각도 있다.
우리은행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상대적으로 사안을 세밀하게 검토하고, 관리하는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면서 “부장만 되면 일은 안 하고 안팎으로 네트워크 관리만 한다는 내부 비판이 적지 않았고, 그 문화가 오랫동안 누적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부통제시스템이 대폭 강화된 점을 고려하면 가능한 일인지 싶다”면서 “개인의 일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조직 전체적으로 누적된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난 사례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차주만 11개, 자본잠식 상태에서 대규모 대출…4년 이상 방치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연루된 부당 대출에는 적어도 11개의 차주가 이름을 올렸다. 원리금 대납사실 등을 고려하면 차주는 20여개로 늘어난다. 주로 법인을 설립해 대출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서류 진위여부 확인 누락, 담보·보증 부적정, 대출 심사 절차 위반, 용도 외유용 점검 부적정 등 사례가 확인됐다.
담보 가치를 부풀려 부동산 매입자금 대출과 리모델링 공사 자금 대출을 연달아 받는가 하면 대출금을 본래 용도와 달리 사용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심지어 대출 신청 시점에 차주가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지만 차주의 신용도를 상향 평가해 대출을 실행한 건도 확인됐다.
관련 대출은 손 전 회장이 퇴임한 이후 10개월이 지난 올해 1월까지 집행됐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9~10월께 여신감리 중 해당 사실을 인지했으나 올해 1월에서야 자체 감사를 진행했다. 이후 4월에 이뤄진 손 전 회장의 처남 김씨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임씨에 대한 자체 면직처분 사실도 금감원에 알리지 않았다. 대출에 문제가 있다고 인지하고도 관련 대출에 대한 이렇다 할 통제 조치가 없었던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여신감리부서는 전직 회장 친인척 대출 사실을 현 은행 경영진에 보고했고, 우리금융지주 경영진은 늦어도 올해 3월에는 알 수 있었다”면서 “금융사고 자체뿐만 아니라 사후대응 절차 등 전반적인 내부통제 미작동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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