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80화. 마야의 피라미드와 비의 신
옥수수 인간들이 비의 신을 경배한 까닭
옛날, 세상은 어둠과 혼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바라본 두 신, 구쿠마츠와 테페우는 힘을 합쳐 세상을 창조하기로 했죠. 하늘을 들어 올려 땅과 나누고, 하늘에 동물과 식물을 채우고 물을 제공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와 땅을 적시며 흘러간 물은 바다를 형성했고, 이로써 땅의 경계가 생겨나죠. 다음으로 신들은 땅에 생명을 불어넣었어요. 새와 사슴, 재규어와 뱀 같은 모든 동물을 창조해 땅에 놓고, 그들에게 살 곳과 역할을 주었죠. 하지만 동물들은 신을 숭배할 줄 몰랐고, 그들의 언어는 신을 찬양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신은 신들을 숭배할 수 있는 지혜를 지닌 자를 만들기로 하죠. 처음엔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지만, 너무 약해 금방 무너지고 물에 녹아 사라졌어요. 다음으로 나무로 만든 인간은 매우 튼튼했지만, 영혼도 감정도 신을 찬양할 지혜도 없었죠. 많은 실패 끝에 신들은 옥수수 반죽으로 인간을 만듭니다. 그들이 신에게 감사하며 숭배하자 신들은 그제야 만족했죠.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생명의 재료인 옥수수를 기르며 살아갑니다. 신들을 숭배하지 않은 나무 인간들이 홍수로 쓸려나간 것을 아는 인간들은 신들에 대한 경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옥수수로 인해 태어난 인간. 마야의 여러 부족 중 하나인 키체(K’che’)의 책 『포폴 부(Popol Vuh)』에 등장하는 창세 이야기입니다. 마야인들이 바라본 세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죠.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옥수수 반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포폴 부』에 따르면, 공을 가지고 즐기는 파타(Pata) 게임으로 지하의 신들을 화나게 해 죽음을 맞이한 신, 훈 후나푸의 머리가 변해 옥수수가 생겼다고 해요. 신이 변하여 만들어진 작물이기에 이를 이용해 만들어진 사람에게 영혼과 지혜가 깃든 것이죠. 마야뿐 아니라 올맥·아즈텍 같은 여러 메소아메리카 문명에서 주된 식량으로 널리 이용된 옥수수는 다양한 기후에 쉽게 적응하여 잘 자랄 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죠. 탐험가라고 불리는 침략자들을 통해 유럽에 소개된 옥수수는 특히 빈곤층의 주요 식량으로 다양한 음식 문화의 바탕이 됐어요.
문제는 옥수수를 기르기 위해 물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아메리카의 중간에 있어 그리스어로 중간을 뜻하는 ‘메소(Meso)’를 붙여 부르는 메소아메리카 지역은 적도보다 약간 북쪽에 자리 잡아 열대에서 아열대에 이르는 기후를 지녔어요.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두 바다 사이로 길게 뻗어 비교적 습하고 비도 많이 오는 편입니다. 하지만 내륙의 고원 지대는 꽤 건조한 데다, 11월에서 4월에 이르는 건기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맑은 날씨만 계속되죠. 이 지역 사람들은 특히 비에 민감했습니다. 홍수처럼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비가 아예 내리지 않는 게 더 문제였죠.
때문에 그들은 비를 바라는 제사를 자주 지냈어요. 비의 신은 마야에서도 아즈텍에서도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였는데, 메소아메리카의 후기 문명 중 하나인 아즈텍에선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있는 두 개의 대 피라미드 중 하나를 비의 신 틀랄록(Tlaloc)에게 바쳤을 정도였죠. 메소아메리카의 피라미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신전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오랜 가뭄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신에게 다가가 탄원하고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거대한 건물을 세웠다고 해요. 수많은 계단을 통해 이 신성한 공간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특별한 제물, 바로 그들 자신을 바쳤는데 이에 신이 기뻐하며 비를 내려주었다고 하죠. 아즈텍의 틀락록이나 마야의 차악, 또는 쿠쿨칸 같은 신은 비를 내려주는 동시에 가뭄과 폭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기에 그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제사를 계속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피라미드는 멀리 하늘과 땅을 나눈 경계를 바라보고 하늘의 신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자 높이, 또 오래 유지되도록 튼튼하게 만들었죠. 항상 건조한 사막이 아니라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며 숲이 우거진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2000년도 전에 만들어진 마야의 피라미드가 건재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는 올맥·테오티우아칸·아즈텍 같은 메소아메리카의 다른 문명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럼에도 얼마 전 멕시코의 한 피라미드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즈텍의 강적으로 군림했던 제국의 주인공, 푸레페차인들이 자그마치 1100년 전에 만든 건물이죠. 과학자들은 높은 기온과 가뭄으로 피라미드에 균열이 생겼고, 이 틈으로 폭우가 쏟아져 무너졌다고 합니다. 이는 분명히 자연 현상이지만, 신에게 향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튼튼하게 세워진 이곳이 무너진 사건을 보며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어요.
마야 신화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인간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세상을 창조하며 다스리는 신을 경배하고 공경하는 지혜와 영혼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죠. 실망한 신들은 큰비를 내려 쓸어버렸고, 그들 중 일부만이 동물이나 나무로 변하여 살아남았는데, 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원숭이는 그 후손이라 합니다. 신을 경배하지 않으면 재앙이 찾아온다는 교훈은 수메르와 그리스, 그리고 성경의 대홍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죠. 세계 각지에 남겨진 이들 신화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신, 더 정확히는 자연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 다른 지역의 대홍수 신화에 대해서는 18회 ‘대홍수’, 75회 ‘수메르 신화와 홍수’를 참고하세요.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요즘 송파는 ‘찐강남’ 아니다…계란 배달이 가른 운명 | 중앙일보
- '젊은 대장암' 한국 MZ가 세계 1위…이 음식은 드시지 마세요 | 중앙일보
- "사람 얼굴부터 보이나요?" 당신은 잡생각이 많군요 | 중앙일보
- 文은 뇌물, 김정숙은 타지마할...文부부 초유의 동시 수사 | 중앙일보
- 아내 찌른 남편 47층서 투신 사망…집안엔 어린 자녀 있었다 | 중앙일보
- [단독] '기밀유출' 정보사, 7년간 외부감사 ‘0’…文때 바꾼 훈령 때문 | 중앙일보
- "회사선 참다가 집에서 폭발" 번아웃보다 위험한 '토스트아웃' | 중앙일보
- 컵라면 물 가득 부어 끼니 때워…박근혜 어깨 본 의사는 “참혹” | 중앙일보
- 밤새 긁다가 피 뚝뚝…늘어나는 '중증 아토피' 치료법 찾는다 | 중앙일보
- 尹 ‘경제낙관론’이 놓친 3가지…성장 착시ㆍ가계빚ㆍ내수부진 [view]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