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인원 보험’ 500만원 허위로 탄 설계사…등록도 취소된 까닭

최서인 2024. 9.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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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홀인원 이미지. 김상선 기자


한 보험설계사가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한 뒤 직장을 잃게 됐다. ‘홀인원 보험’의 보험금 500만원을 타기 위해 보험사에 제출한 허위 영수증 때문이다.

보험설계사 A씨는 2011년 홀인원을 하면 관련 비용을 500만원까지 지급해주는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축하 만찬, 기념품 구입, 축하 라운드 등 1개월 내 발생한 경비를 지급해주는 실손 보험상품이었다.

이후 A씨는 실제로 2014년 충북 제천 한 골프장에서 홀인원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튿날 골프용품점을 찾아 신용카드로 500만원을 결제한 뒤 곧바로 결제를 취소했다. A씨는 이미 결제 취소된 영수증을 보험사에 제출한 뒤 500만원을 받아냈다.

2019년 이같은 행각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A씨는 사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A씨는 보험사에 454만원을 돌려줬고,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 처분(기소유예)을 받았다.

그러나 A씨의 직업이 보험설계사라는 게 또 다른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을 인지한 금융위원회에서는 “보험계약에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보험사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보험업법을 근거로 지난해 6월 A씨의 보험설계사 등록을 취소했다.

A씨는 보험사기를 저지른 게 아니라며 이같은 조치에 반발했다. 그는 “비용을 개별 건별로 영수증을 첨부해 보험사에 제출하는 게 번거롭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이라며 “어차피 홀인원 비용으로 500만원 이상 지출할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실제로 한 달간 홀인원 비용으로 약 866만원을 썼다”고도 항변했다.

이어 A씨는 금융위의 설계사 등록 취소 조치가 과하다며 금융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박정대)는 A씨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설계사 등록 취소처분 취소 청구의 소’에서 A씨 패소로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결제 취소된 허위 영수증을 근거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건 보험회사를 속이는 행위이므로 그 자체로 문제”라고 지적했다. 설령 A씨가 추후에 실제로 500만원 이상을 홀인원 축하 비용으로 썼다 하더라도 이는 이미 보험사기가 발생한 뒤에 일어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A씨가 보험설계사 신분으로 보험사기를 저지른 건 더욱 큰 문제이며, 이에 비추면 등록 취소는 과도한 조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등록이 취소되더라도 2년 후에는 재등록이 가능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보험설계사의 보험사기는 거래 질서에 미칠 악영향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크다”며 “보험제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려 제도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도 있으므로, 엄격히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A씨는 허위 영수증으로 보험금을 받는 행위가 보험사기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지출할 것이라는 이유로 허위 영수증 제출 등 적극적 청구까지 나아간 것은 그 자체로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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