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밀유출' 정보사, 7년간 외부감사 ‘0’…文때 바꾼 훈령 때문

이근평 2024. 9.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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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요원 명단 유출과 하극상 등 최근 각종 사건으로 기강 해이와 안보 의식 부재를 드러낸 국군정보사령부가 7년 동안 외부의 보안감사를 한 차례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격년으로 국군기무사령부(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가 정보사를 감사하도록 돼 있던 훈령을 문재인 정부가 개정하면서 외부 기관의 감사 권한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과천시 국군기무사령부 정문 초소 앞에 안보지원사령부 마크가 걸려있다. [뉴스1]


기무사 해편 여파…안보지원사, 정보사·777사령부 보안감사 권한 잃어

1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과 군 당국에 따르면 당초 해편 전 기무사는 감사기관과 대상을 명시한 국방보안업무훈령 186조에 따라 정보사와 777사령부에 대한 보안감사를 국방정보본부와 나눠 실시했다. 기무사와 국방정보본부가 해를 번갈아가며 연 1회 감사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작성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가 2018년 9월 기무사 해편 뒤 안보지원사를 출범시키면서 변화가 생겼다. 2019년 2월 훈령을 개정해 안보지원사가 감사하는 기관 중 정보사와 777사령부를 삭제한 것이다.

국군정보사령부 로고. 1990년에 창설돼 1999년 국방정보본부에 편입됐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인 2022년 11월 안보지원사를 지금의 방첩사로 바꾸고 방첩 기능 등을 강화했지만, 해당 훈령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에 따라 정보사와 777사령부는 2017년 기무사의 보안감사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외부 방첩조직의 보안감사를 받지 않고 있다. 훈령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2017년 기무사, 2018년 국방정보본부, 2019년 안보지원사 순서로 감사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더 엄격한 감사 받아도 모자를 판에…軍 첩보조직 사실상 ‘내부 감사’

이와 관련, 국방부는 “(당시 훈령을 고치며)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에 대한 보안감사를 방첩사가 실시하도록 확대 개정했다”며 “다만 정보사 및 777사령부는 국방정보본부 예하부대로서 국방정보본부가 매년 보안감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밝혔다. 역할이 커진 방첩사는 다른 직할 부대와 기관 감사에 전념하도록 하고, 대신 국방정보본부가 정보사와 777사령부의 감사를 전담하도록 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군 안팎에선 정보사와 777사령부에 대한 보안감사 권한을 사실상 내부 조직인 국방정보본부로 한정한 것은 납득이 어렵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국방정보본부가 직접 관리·지휘하는 조직인 정보사와 777사령부 모두 중요 첩보를 취급한다는 점에서 보다 엄격한 보안을 요구 받는다. 정보사와 777사령부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대북 정보를 수집, 국군 첩보전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개정 전 훈령에서 정보사와 777사령부를 기무사의 감찰권 하에 둔 것도 이런 특수성을 고려할 때 외부 기관이 참여하는 철저한 보안 감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는데, 문 정부 당시 이런 ‘이중 감사 장치’를 해제한 셈이다.


10여대 휴대전화 번갈아 들여오는 방식…단순하게 뚫린 보안


이번에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명단 등 기밀을 중국 정보 요원에게 빼돌리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두고도 결국 국방정보본부의 ‘제 식구 감사’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이번에 기밀을 유출한 군무원 A씨는 범행 과정에서 10여대의 휴대전화를 대놓고 사용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보안 어플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인가 폰’ 외에 다른 휴대전화를 몰래 가지고 들어와 영내에 숨겨 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반입한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활용해 A씨는 2~3급의 비밀을 촬영하는 등 유출할 기밀을 확보했다. 이런 단순한 방식으로 감시망을 피한 A씨는 수월하게 기밀을 빼돌릴 수 있었다.

국방부가 공개한 정보사 군무원 기밀 유출 사건 체계도. 국방부

공교롭게도 A씨의 범행은 기무사의 보안 감사가 마지막으로 이뤄진 2017년 시작됐다. 이후에는 국방정보본부의 보안감사만 이뤄졌는데,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던 셈이다.

군 내부에서 방첩사의 보안감사 체계가 무력화되지 않았다면 다각적인 감사를 통해 기밀 유출 행위를 초기에 포착했을 수 있다는 의견도 그래서 나온다. 제대로 된 보안감사가 이뤄졌다면 A씨가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영내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은 이번 기밀 유출 사건을 윤 정부의 안보 실패로 공격하지만, 실상은 문 정부에서 일부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정치 논리로 인해 군 내 방첩조직의 권한이 부침을 겪는 걸 근본적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기무사 해편 이후 안보지원사의 권한을 축소하는 데 방점을 찍은 게 훈령 개정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뜻이다.

강대식 의원은 “군을 대표하는 첩보조직인 정보사와 777사령부만 콕 집어 안보지원사 권한 밖에 두도록 했다”며 “지난 정부가 방첩기관의 활동 폭을 축소시켜 견제 기능 없는 정보사를 만든 건 정보사 이적행위 사건에 대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보안업무훈령 정기 개정이 논의될 때 보안감사 제도 개선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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