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칼럼] 표류하는 K의료, 의정 대화 서둘러야
K팝, K방산처럼 우리 자부심의 한 축이었던 K의료가 수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정부와 전공의의 강대강 대치가 반년을 넘긴 가운데 불안한 소식들이 주변을 옥죄어 오고 있다. 얼마 전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응급실 뺑뺑이 회고담, 민주당 김한규 의원 부친의 안타까운 사연, 그리고 평범한 이웃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수술 지연 소식으로 불안감은 날로 커가는 중이다.
필수 의료, 지역 의료, 의대 정원 등 복잡한 이슈들이 두루 얽혀 있는 것이 의정 대치이니만큼 먼저 K의료의 핵심부터 짚어보자. 요즘 유튜브에는 한국에 정착한 외국 청년들이 모국의 부모를 초대하여 K의료를 자랑하는 콘텐트들이 많다. 이들 눈으로 보면 우리 의료의 특징들이 잘 보인다. 미국, 영국 등에서 온 유튜버 부모들은 서울에 와서 허리 통증 치료를 받기도 하고 무지외반증 치료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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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개월 대치로 시민 불안감 커져
개혁-반개혁 이분법은 비현실적
정부는 책임감과 열린 태도 필요
의사는 자율과 공공의식 균형을
」
이들의 눈에 비친 K의료는 상당히 저렴한 비용에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력 있는 의료진이 풍부한 효율적인 체제였다. 영국, 미국에서라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진료 예약, 검사 예약은 하루 이틀 길어야 몇 주 내로 가능하다. 두 번째로 놀라운 것은 상대적으로 값싼 진료비이다. 간단한 처치, 치료조차 수백 달러에서 시작하는 선진국들의 의료 수가에 비해 우리의 진료비는 외국인들로서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게다가 빅5 병원부터 지역병원에 이르기까지 솜씨 좋고 내공 있는 의료진이 즐비한 것이 2월 이전의 K의료였다.
지난 2월 정부는 의료 개혁이라는 이름의 제도 변화를 호기롭게 시도하였다. 외관상으로는 큰 문제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필수 의료분야 인력 부족, 지역 의료 부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의사 숫자를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다. 초반에는 여론과 언론이 정부 편을 들었다. 값싸고, 접근이 쉬운 의료 서비스는 당연하고 나아가 진료 과정에서 환자 개인들이 더 배려받아야 한다고 믿는 여론은 의사들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정부에게 섣부른 박수를 보냈다.
초반 지지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자, 반발의 중심에 선 것은 상급 종합병원의 하부 구조와 궂은일을 떠맡아온 1만 명의 전공의들이었다.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을 급격히 늘린다고 해서 지금의 일부 분야 편중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보다는 필수 의료 수가가 대폭 인상되어야 하고 의료 소송 등의 리스크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1만 명의 전공의들은 지난 2월 사직을 하고 병원을 떠났다. 그동안 전공의에 의존해 오던 상급 종합병원과 환자들은 지쳐가고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결국 반년 넘게 K의료가 표류하면서 민심의 풍향이 바뀌고 있다. 초반에 의료진 기득권 비판으로 기울던 여론은 최근 들어 실용적 입장으로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 의정 대치에 따른 피해와 불안은 고스란히 환자들과 시민들의 몫이니, 정부와 전공의가 우선 대화를 시작하라는 것이 평균적인 시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여론의 바람과 필자의 생각을 사회과학적인 언어로 표현해 보자면, 정부는 추진 중인 의료 정책 변화를 거대한 개혁 당위론으로 프레이밍하는 기존의 접근법을 접어야 한다. 관념상으로는 개혁의 대의와 어젠다를 근사하게 설계할 수 있고, 참된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 집단의 저항을 상상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현실이라는 맥락을 생각해 보면, 당장 적용 가능하며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제도 변화 패키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정부는 개혁의 구세주이고 전공의는 반(反)개혁 집단이라는 흑백 논리는 현실과 충분히 부합할까? 예를 들자면, 의대 신입생을 2000명 늘리기만 하면 필수 의료, 지역 의료는 기적처럼 살아나는가? 사법 리스크를 정리하지 않고서 필수 의료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필자는 전공의들도 입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민들은 전공의들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기대서 그동안의 K의료가 가능했음을 알고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정부도 충분히 공감을 표명하는 것을 전제로 전공의들은 정부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 전공의 처우 개선, 필수 의료, 지역 의료 살리기에 대한 현실적 대안들을 찾는 논의 과정에서 전공의들은 공동 주연이 되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윤석열 정부는 아마도 자유와 민주를 지킨 정부로 역사에 기억되고 싶은 듯하다. 그처럼 강조하는 자유의 세계에서 뚜렷한 선과 악, 개혁과 반개혁의 선명한 구분은 있을 수 없다. 충돌하는 견해, 상반된 입장에 대한 열린 태도가 곧 자유주의의 출발이다. 정부는 의료정책의 총괄 기획자라는 팽창된 자의식과 개방적인 태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전공의들은 전문가로서 추구하는 자율성과 의료 종사자로서의 공공 의식 사이에서 현실적 균형을 찾아야만 한다. 시민들은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고 있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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