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정년 연장, 노사가 윈-윈하는 지혜 모아야

2024. 9. 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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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올해부터 2차 베이비부머(1964~73년생) 945만명이 정년 연령에 진입한다. 내년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길 전망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 걱정으로 더 오래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55~64세 고령층은 평균 71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한다.

당연히 노동계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 여론이 비등하다. 60세인 정년을 65세까지 올리는 법안이 금융노조 출신 야당 의원에 의해 발의됐고, 상당수 공기업과 대기업 노조는 정년 연장을 올해 단체교섭 테이블에 올렸다. 이들은 정년 후 국민연금 수급 연령까지 소득 공백이 발생하여 빈곤에 빠진다는 입장이다.

「 고령 인력 활용 없이 성장 힘들어
정년 연장시 청년 일자리 악영향
이해관계자 참여한 개혁안 필요

정년 논의, 이해관계자 모두가 함께해야. 일러스트=김지윤

고령 인력 활용 없이 성장은 힘들다. 우리나라 고령자들은 교육 수준이 높은 숙련 인력으로 일할 의지도 강하다. 이들의 조기 은퇴는 노동력 손실이다. 그렇더라도 법정 정년 연장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양극화가 심한 노동시장 특성상 대기업 근로자만 혜택을 받고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충격이 전가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심각한 구인난으로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한 곳이 많다.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직원 300명 이상 기업의 94.3%가 정년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300명 미만 기업은 21.9%에 불과하다. 취업규칙 상 평균 정년 연령도 대기업이 60.2세인 데 반해 중소기업은 61.5세이다. 대기업 정규직은 전체 일자리의 15%에 불과하다. 근로자의 85%는 중소·영세기업에 있다. 법정 정년을 늘리면 그 수혜가 고령층 내에서도 소수에 돌아간다는 말이다.

현행 노동법제와 임금 체계에서 정년을 강제하면 기업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기업은 은퇴 시기 임금이 입사 시의 세 배에 달해 그 부담은 가중된다. 가뜩이나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은 채용 규모를 줄여온 터였다. 2013년 58세였던 법정 정년이 60세가 되었을 때도 대기업은 신규 채용을 크게 줄였다. 결국 고령자와 청년이 대기업 일자리를 두고 제로섬 게임을 벌일 게 뻔하다.

고용 상황이 더 암울한 쪽은 청년이다. 34세 미만 청년이 생애 첫 일자리를 얻는 데 걸린 기간이 13.9개월로 역대 최장이다. 시간이 걸려 어렵사리 얻은 첫 일자리는 기간제이거나 시간제인 경우가 많다. 임시·일용직 비중이 34.4%, 시간제 비율은 18.7%나 된다.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청년도 44만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4만명 늘었다. 고령층은 취업자 수가 늘기라도 하지만 청년층은 이마저 감소 추세다.

정년 연장은 막연히 고용 기간이 늘어난다는 긍정적 의미로 인식되지만, 이면엔 기업 간, 노동자 간, 세대 간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앉은 노·사·정이 계속고용이란 용어를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모두가 상생하면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년에 대한 대응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해고 제한이 없고 직무급제 임금 체계를 가진 미국은 정년을 폐지했다, 해고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연금 재정이 부족한 독일은 근로자의 반대에도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늘렸다. 고령화가 앞선 일본은 2004년 기업에 고령자고용확보조치를 부과했다. 60세인 법정 정년 폐지나 연장, 계속고용제 도입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재고용과 자회사 전출 등 다양한 방식을 계속고용으로 인정한다.

우리도 정년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법적 쟁점도 많다. 정년의 유형, 임금 수준, 대상자 선정, 근로자의 법적 지위, 근로계약 관계, 취업규칙 변경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이해관계자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 일본도 6년에 걸친 제도 준비와 논의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했다. 노·사·정은 지난 6월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의 시동을 걸었다. 많이 늦었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다행이다. 정년 개편을 위해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 미래세대가 기득권에 막혀서는 노동시장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업그레이드된 성장모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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