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아쉽다”가 남긴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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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는 취임하던 2013년 3월 물러나는 부총재 야마구치 히로히데를 불러 "일본은행은 왜 그렇게 독립, 독립이라고 하는가"라고 캐물었다.
이어 "헌법과의 관계에서 볼 때 독립이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정부와 연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냐"고 했다.
"구로다에게 있어 일본은행 총재의 요체는 '독립성'보다는 '정부와의 연계'에 있었다. 흔들림 없는 노선이 이미 깔려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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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는 취임하던 2013년 3월 물러나는 부총재 야마구치 히로히데를 불러 “일본은행은 왜 그렇게 독립, 독립이라고 하는가”라고 캐물었다. 이어 “헌법과의 관계에서 볼 때 독립이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정부와 연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냐”고 했다. 해당 일화를 소개한 책 ‘침몰하는 일본은행?’의 저자는 이런 평가를 덧붙였다. “구로다에게 있어 일본은행 총재의 요체는 ‘독립성’보다는 ‘정부와의 연계’에 있었다. 흔들림 없는 노선이 이미 깔려 있었던 것이다.”
10년간 재임하며 일본은행 최장수 총재 기록을 갈아치운 구로다 전 총재는 ‘아베노믹스’ 실행의 핵심축이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은 것처럼 ‘구로다 바주카포’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화끈하게 돈을 풀었다. 대규모 국채 매입, 마이너스 금리, 수익률곡선통제(YCC) 등 차원이 다른 금융 완화로 아베노믹스의 뒷배가 됐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22년 5월 강연에서 “일본은행은 정부의 자회사”라고 실언 아닌 실언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담한 금융 완화의 성적표는 어떨까. 표면적으로는 주가가 상승하고 고용이 개선됐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즈음인 2012년 12월 말 1만395에서 구로다 전 총재 퇴임 전날인 2023년 4월 7일 2만7518로 올랐다. 유효구인배율(구인수÷구직자수)도 2012년 12월 말 0.83명에서 지난해 4월 1.32명으로 높아졌다. 고질병인 디플레이션 추세 반전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성과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12년 4만9175달러에서 2022년 3만4358달러로 감소하는 등 일본 경제 위상이 과거에 비해 축소됐다. 잠재성장률도 구로다 총재 취임 당시와 비교할 때 퇴임 시 절반 이하로 꺾였다. 구로다 전 총재가 취임 2년 안에 달성을 자신했던 물가 목표(2%)를 퇴임 때까지 달성하지 못해 통화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개선된 고용지표 이면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증가도 포함돼 있다. 무엇보다 초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일본은행이 일본 국채의 50% 이상을 떠안은 것 등 ‘구로다 시절’ 벌여놓은 정책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일본은행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한국은행도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정권에 따라 한은의 독립성이나 중립성이 위협받을 때면 옛 별명이 소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가 2022년 8월 한은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로부터는 그렇지 않다고 할 정도로 정권으로부터 한은의 독립성은 많이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지난달 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아쉽다”고 한 것은 반대 방향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대통령실은 사후 아쉬움을 토로한 것 자체가 독립성을 방증한다고 했지만 지난 6월부터 대통령실·총리·여당 관계자의 발언이 반복해서 금리 인하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회성 입장 표명으로 보기 힘들다. 반복되는 금리정책에 대한 정책 대출 확대와 2단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연기 등 부동산 시장 불안을 제때 제거하지 못한 책임을 한은에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단기 부양 유혹에 취약한 정권에 비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장기적 안목으로 경제정책을 결정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정권의 시선이 기준금리 결과보다 구조개혁 같은 장기적인 과제에 더 머무르길 바란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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