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공화주의 시각에서 본 건국절 논란
우리나라 국·영문 국호 불일치
'공화' 표기도 본뜻 '公和' 대신
권력분점만 강조한 '共和' 채택
이런 표기 문제는 소모적 논쟁
광복절이든 건국절이든
公和든 共和든, 중요한 것은
헌법정신과 국가의 정체성
지금 우리에게는
근사한 국경일이 아니라
공공의 덕성을 갖춘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광복절 즈음 불거진 건국절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20여년 전 일부 보수 인사가 제안해 시작된 건국절 지정 문제는 친일파의 역사 세탁 논란으로 번지더니,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친일 공직자 임용 금지법’까지 꺼내 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건국절 논란에 앞서 간과한 것이 있다. 우리 헌법 공동체를 표기하는 국문 국호와 영문 국호의 불일치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 헌법은 임시정부 시절부터 줄곧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했다. 국문 국호인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직역하면 People’s State of Great Korea이지만 공식 영문 국호는 Republic of Korea, 즉 ‘한(韓) 공화국’이다.
일견 우리나라 국호가 국문으로 민주주의를, 영문으로 공화주의를 표방함으로써 양자의 조화를 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은 People’s Republic of China, 일본국은 State of Japan,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직역하는 것과 비교할 때 우리의 영문 국호는 이례적이다. 대만만 우리와 비슷하게 중화민국, Republic of China로 표기한다. 1912년 수립된 중화민국은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으로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우리 임시정부에 중화민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했던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한 가지 더 있다. 공화주의는 영어로 republicanism이고, 라틴 어원은 res publica, 즉 public affairs를 뜻한다. public은 한자로 공평할 공(公)이다. 공중(公衆)의 이익인 public interest는 公益으로 표기한다. 공무원(public official)이나 공유재(public goods)도 마찬가지로 공평할 공(公)을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공화주의를 公和主義가 아닌, 함께 공(共·common)을 써서 共和主義로 풀었다.
共和主義는 republicanism의 일본식 표현이다. 중국 고전에서 公和와 共和의 개념을 발견하고 고민했던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 지식인들은 결국 共和를 공화주의의 표기로 택했다. 민주주의 개념이 희박했던 고대 중국에서 군주제가 아닌 집단지도체제를 이뤘던 시기를 共和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communism도 共産主義로 풀면서 공산주의와 공화주의가 형제자매라는 오해를 낳게 했다. 한자 문화권에서 공산주의 국가가 공화국과 republic이란 국호를 많이 쓰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공화주의의 본래 의미에 충실했다면 우리 헌법의 아버지들만큼은 이를 公和主義로 풀었어야 맞는다. 공공성(公共性)이란 말에서 보듯이 公과 共은 친화성이 높다. 하지만 共和의 관념은 공동 통치, 집단지도체제 등 군주정을 부정하고 권력을 함께 나눈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권력의 공(公)적 속성, 즉 공평하고, 공변되고, 상대를 높이는 것은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권력을 홀로 독점하지 않고 누군가와 나누기만 하면 공화가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남에 대한 염치와 배려가 없으면 공화가 아니다.
모호한 한자 풀이로 인한 대중적 오해의 사례가 있다. 2016년 가을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진보 성향의 어느 방송인이 촛불광장에 나섰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공화국이 뭔지 아십니까? 함께 공(共), 벼 화(禾)와 입 구(口)를 합친 화할 화(和), 즉 쌀을 입으로 함께 나누어 먹는 겁니다!” 광장에 모인 군중은 환호했다. 이런 식의 사회주의적 해석은 나라 살림을 거덜 내고 공화정을 빈털터리 공(空)화정으로 내모는 일이다.
100년 전 고민에 지금의 잣대를 들이대서 친중이니 친일이니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호의 영문과 한자가 불일치하는 문제도 남북통일 때까지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서구에서도 공화주의의 많은 부분이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에 포섭돼 republic의 원형을 따지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 됐다. 건국절이 됐든, 광복절이 됐든 국가의 정체성이 중요하다. Republic of Korea든, Great Korea든, 共和이든 公和이든, 우리 헌법정신을 잘 새기면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사한 국경일이 아니다. 지나친 권리의식이나 소유욕보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양보라는 公共의 덕성을 갖춘 근사한 시민의식(civil consciousness)이 필요할 뿐이다.
구민교(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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