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의 미래를 묻다] 영원한 생명은 영원할 수 없다

2024. 9. 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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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는 DNA 복제를 통해 분열함으로써 자신과 똑같은 더 젊은 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늙어 죽는 것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포는 왜 더는 분열하지 못하는 것일까? 답은 DNA 복제에 있다.

우리 몸의 설계도인 DNA
DNA는 기본적으로 수소·탄소·질소·산소·인으로 이루어진 이중 나선 구조의 사슬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당과 인산이 이중 나선 구조를 지탱하는 두 가닥의 뼈대를 만들고, 그 안쪽으로 아데닌·타이민·구아닌·사이토신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염기들이 수소 결합을 통해 두 가닥의 뼈대 사이를 마치 사다리처럼 연결한다. 염기들이 서로 결합하는 방식에는 정확한 규칙이 있다. 만약 이중 나선 구조의 한 뼈대에 아데닌(A)이 붙어 있다면 다른 뼈대에는 반드시 타이민(T)이 붙어 있어야 서로 결합할 수 있다. 비슷하게, 만약 한 뼈대에 구아닌(G)이 붙어 있다면 다른 뼈대에는 반드시 사이토신(C)이 붙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중 나선 구조의 한 뼈대에 염기 서열 AATGCTAGGCTC…이 붙어 있다면 다른 뼈대에는 그것과 딱 맞게 결합할 수 있는 염기 서열 TTACGATCCGAG…이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 몸의 설계도인 유전 정보는 DNA의 염기 서열에 담겨 있다.

「 늙어죽는 건 세포 분열 못하는 탓
텔로미어 짧아지면서 복제 중단
바닷가재, 텔로미어 유지돼 장수
껍질 탈피 어려워져 결국은 사망

DNA 복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우선, 헬리케이스(helicase)라는 효소가 DNA 복제 원점이라는 특정한 영역에 붙어 마치 지퍼를 풀어 당기듯이 DNA를 두 가닥으로 풀어낸다. 이때 풀어진 각각의 가닥에는 ‘단일 가닥 결합 단백질’이 붙어 이중 나선 구조로 재결합하는 것을 막는다. 그다음, 각각의 가닥에 프라이머(primer)라는 짧은 염기 서열이 붙고 그 자리를 기준으로 DNA 중합효소(polymerase)가 염기 서열을 복제하기 시작한다. 염기 서열의 복제가 끝나면 처음 DNA와 동일한 2개의 DNA가 얻어진다.

수명을 결정하는 텔로미어

김경진 기자

이런 DNA 복제 과정에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그 문제는 인간과 같이 염기 서열이 선형으로 나열된 경우, 구조적으로 염기 서열의 말단에서 복제가 일어날 수 없는 부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염기 서열의 정보가 유실되고 세포는 분열하지 못한다. 이것을 ‘말단 복제 문제’라고 한다. 말단 복제 문제는 염색체 말단에 붙어있는 아무 의미 없는 염기 서열인 텔로미어에 의해 해결된다. 텔로미어는 DNA 복제 과정에서 조금씩 소모되지만, 암호화하고 있는 단백질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대신 DNA의 다른 중요한 염기 서열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텔로미어도 길이에 한계가 있어 일정 회수만큼 복제하고 나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 한계는 곧 세포 분열 횟수의 한계를 뜻하는데 전문적으로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라고 부른다. 인간의 경우, 헤이플릭 한계는 대략 60회 정도다.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기 ‘달리(DALL·E)’를 이용해 그린 바닷가재.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아 원칙적으론 영원히 살 수 있다.

자, 그럼 늙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텔로미어를 길게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맞다. 우리 몸에는 소모된 텔로미어를 복원해 그 길이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만들어 주는 효소가 있다. 그 효소의 이름은 텔로머레이즈(telomerase)다. 하지만 불행히도 텔로머레이즈는 배아의 줄기세포에서만 활성화되고 어른이 된 후에는 활동을 멈춘다. 따라서 우리는 늙어 죽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텔로머레이즈가 계속 활동해 원칙적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체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 생명체는 바로 바닷가재다. 물론 바닷가재가 정말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바닷가재는 포식자에게 잡혀먹힐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제외하고도 바닷가재에게는 노화보다 더 잔인한,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온다. 단단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는 바닷가재는 주기적으로 탈피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성장한 바닷가재는 지나치게 단단해진 자신의 껍데기를 부수고 나올 수 없다. 결국 바닷가재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후 자신의 껍데기 안에서 압사당하게 된다.

복제 오류와 암, 그리고 엔트로피
인간은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있으며 탈피도 하지 않는다. 그럼 인간은 텔로머레이즈를 이용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텔로미어를 인위적으로 길게 유지하면 DNA 복제가 무제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복제에는 언제나 오류가 발생한다. DNA 복제 오류는 암으로 바뀔 수 있다. 텔로머레이즈는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럼 DNA 복제 오류를 줄이면 되지 않을까? 충분히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다면 우리는 과학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DNA 복제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도 한계가 있다. 마치 바닷가재가 껍데기를 부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듯이 인간도 DNA 복제 오류를 줄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열역학 제2 법칙, 즉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르면, 생명과 같이 질서정연한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라. DNA 복제 오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명은 DNA 복제 오류, 즉 돌연변이를 통해 진화한다. 개별 인간은 늙어 죽지만 전체 인류는 더 나은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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