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 에이전트
미래 인공지능(AI)은 무슨 일까지 해낼 수 있을까. 새로운 AI가 나올 때마다 많은 연구자가 다양한 과제를 시험해본다. 필자가 흥미롭게 여기는 문제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시험을 풀어보게 하는 것이다. 웹사이트에 가입하거나 로그인할 때 종종 만나는 시험이다. 언뜻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AI는 풀지 못하게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오픈AI 연구자들은 GPT-4 출시 전 이 과제를 시켜보았다. 역시나 GPT-4가 스스로 이 문제를 풀 수는 없었다. 하지만 GPT-4는 해법을 찾아냈다. 한 인터넷 웹사이트에 이 문제를 풀어달라고 글을 올린 것이다. 결국 사람의 도움을 얻어 문제를 해결해 냈다. AI가 창의적인 해법을 고안하고 실행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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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율적으로 지시 수행하는 AI
‘넥스트 빅 씽’으로 주목받아
실생활 적용까지 난관 많지만
장기적 안목의 R&D 추진해야
」
여기서 주목할 점은 AI가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쳤다는 것이다. 어느 웹사이트에 글을 올릴지 판단하고, 요청 글을 올린 다음 사람과 소통하여 답을 얻는 작업을 차례로 수행했다. 참 똑똑한 접근법이다. 이렇게 차근차근 단계별로 접근하면 복잡한 문제도 쉬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 사례를 곰곰이 되새겨 보면, 미래 AI의 발전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AI를 활용하는 방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사람이 질문하면 AI가 답한다. 만족스러운 답이 나올 때까지 이래저래 질문을 바꿔야 할 때가 많다.
미래 AI는 이와는 달리 작동할 공산이 크다. 그저 인간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지시한 작업을 수행해 내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예컨대, 식당을 예약하는 일을 생각해 보자.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식사할 사람의 취향, 교통, 가격대, 분위기, 후기를 모두 고려해 적합한 식당을 골라 예약하는 데는 적지 않은 품이 든다. 언젠가 이 작업 모두를 수행할 AI가 등장할 것이다.
이처럼 AI가 복잡한 과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춘 경우를 ‘AI 에이전트’라 일컫는다. ‘에이전트’라는 단어는 우리 말에 딱 맞는 번역어를 찾기 어렵다. 사전을 찾아보면 007과 같은 ‘첩보원’이라는 뜻이 있다. 법률 분야에서는 ‘대리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다양한 용례에서 공통으로 담긴 의미는 바로 자율성이다. 즉, AI가 스스로 행동하는 주체가 된다는 뜻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자율적 행위자’라 부를 수 있다.
에이전트라는 관점에서 AI의 미래를 상상해 보면 무궁한 가능성이 떠오른다. 일정 관리 에이전트가 약속 시간을 잡아 주고, 쇼핑 에이전트가 생필품 구매를 대신한다. 홈페이지 구축 에이전트에 일을 맡기면 적절한 홈페이지를 설계하고, 웹서버 설치와 도메인 등록 작업까지 대행해 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돈을 벌어오는 활용 사례도 상상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테슬라가 추진해 온 ‘로보 택시’ 사업 모델이 있다. 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하면, 회사나 집에 주차해 놓고 사용하지 않는 동안 자율주행차가 스스로 택시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고객이 맡긴 돈으로 스스로 투자 활동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제품이나 브랜드 광고·홍보 작업을 자동화하는 AI 에이전트 등도 주목받을 것이다.
그래서 에이전트 개발은 AI 연구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미래의 ‘대박’ 아이템이나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간이 그저 지시를 내리기만 하면, AI가 계획을 세운 다음 도구를 활용해 여러 단계에 걸쳐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컴퓨터 게임과 같은 가상 환경에는 이미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갖춘 AI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실세계에 도입되려면 극복해야 할 난관이 많다. 예컨대 코딩 AI가 작성한 프로그램에는 여전히 오류가 적지 않다. 인간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때도 많다. 작업 처리에 시간이나 비용도 많이 든다. 복잡한 현실 환경 속에서 AI 에이전트가 신뢰할 수 있게 작동하려면 앞으로 오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AI 기술이 등장하고 발전하는 와중에는 기술적 잠재력과 현실에서의 사업성을 잘 구분해야 한다. 이제 갓 발전하기 시작한 기술의 잠재력만을 보고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단기간의 사업 성공 가능성에만 치중하여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에 소홀해서도 안 된다.
최근 AI에 대한 과잉 투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AI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AI 겨울’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경고하는 점에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와 같은 기술이 우리 미래를 크게 개선할 잠재력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연구개발(R&D)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 나갈 일이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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