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그리스와 로마
새 학기를 앞두고 미술사 개론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리스와 로마 시대 미술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이 두 시대를 우리는 흔히 같이 묶어서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방식이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원산지인 고대 그리스에서는 개인의 특성보다는 동등한 입장에서 집단적인 동질감을 추구하는 흐름이 지배적이었기에 극도로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만을 보였다. 그리스 전성기의 동상·석상 얼굴들이 하나같이 맑고 아름다운 20대의 젊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반면 고대 로마인들은 개별적인 독특함을 존중해 애초부터 개인의 실제 모습을 묘사한 초상화의 개념이 발달했다. 조상 숭배의 전통이 깊은 로마에서는 어른을 받드는 관습 때문인지 주름진 늙은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초상화가 표준이다. 청춘의 컬트에 얽매여 있는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로마인들은 나이와 함께 축적된 경험과 지혜가 경외를 자아낸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와 로마 미술의 또 하나의 흥미로운 대조점은 바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태도다. 그리스의 공적인 미술은 어지간해서는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 그리고 현실적인 주제를 직접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들을 비유적으로 사용했다. 파르테논 신전을 보아도 사면을 장식하는 조각상들이 모두 신들과 영웅들의 전투를 다루고 있다. 그 전투 장면이 한결같이 문명화된 아군과 야만적인 적과의 대결을 선보이는 것은 ‘야만적인’ 페르시아 적군을 물리친 그리스인들을 찬양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조적으로 고대 로마인들은 일찍부터 역사적 사건들을 거침없이 사방에 표현하고 기념했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그들의 체험을 그대로 드러낸다. 우리가 현재 보는 서양 사회의 관습과 도덕은 로마 문명의 현실성과 그리스 이상주의의 결합이라 볼 수 있겠다. 한국 정치의 발전도 결국 누가 더 이상과 현실을 냉혹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바라보느냐에 달려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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